혼자서 안되던 것이 함께할 때 된다.

공감의 창발

by kamaitsra

집 거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 휴대폰을 보며 축구 경기를 본다. 우리 팀이 골을 넣는다. 나는 미소 짓는다. 혹은 '그렇지'하면서 주먹을 쥔다. 그게 끝이다. 심장 박동은 그대로다. 체온도 변하지 않는다.


그 주 토요일에 축구 경기장에 간다. 회사에서 나눠준 무료 티켓으로. 나는 직접 경기장에 앉아 선수를 움직임을 가까이서 본다. 수천 명의 같은 색으로 코스튬한 고정 팬들이 응원 중이다.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는다. 이번에는 목이 알아서 터져라 소리가 난다. 옆 사람과 껴안는다. 손에서 땀이 나고 흥분된다. 심장이 뛴다. 몸이 떨린다.


나는 메모한다.


"같은 팀, 같은 골, 다른 반응. 무엇이 다른 가?"


나는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 쓴다. "전율의 순간은 혼자서 안되고 함께할 때 된다. "




앞서 나는 공감의 문턱에 대해 썼다. 모든 공감에는 임계치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문턱이 있다. 혼자서는 공감할 수 없고 이룩 할 수 없다. 혼자서는 해내지 못하는 것들.


"그 문턱은 어떻게 넘어지는가?"


여러명이 동시에 반응할 때, 개인의 미약한 신호는 증폭되어 배가 되어 문턱을 넘을 수 있다. 물리학적으로는 공명. 생물학적으로는 동조. 사회학적으로는 집단화. 다시 말해 집단이 한 방향의 의지로 공감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것을 공감의 창발(emergence of empathy)이라 부르기로 한다.




정의부터 내려보자. 건조하게, 그러나 체온을 남겨.


기본적으로 개별 의지와 반응이 집단적 동조를 이루며 임계치를 넘어, 개인 합 이상의 새로운 실체·정체성·행동양식을 출현시키는 현상이다.


하나의 의지가 강한 반응을 만난다. 공감을 낳는다. 그 공감은 다시 또 다른 의지가 된다. 이 의지는 또다시 반응을 유도한다. 순환. 끝없는 순환.

이 순환이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집단적으로 강화된다. 어느 순간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실체가 창발한다.


이것이 공감의 질적 도약이며 공감의 창발이다.




수소를 생각한다. 가벼운 기체. 산소를 생각한다. 역시 가벼운 기체.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둘이 만난다. H₂O. 물. 완전히 다른 성질의 존재가 등장한다. 액체. 흐른다. 젖신다. 생명을 품는다.

단 한 분자의 H₂O는 아직 물이 아니다. 여전히 불완전하다. 하지만 이들이 모인다. 연결된다. 축적된다.

물방울이 된다. 흐름이 된다. 강이 된다. 바다가 된다. 그제야 본래 의지를 드러낸다. 물은 스며든다. 강은 정화한다. 바다는 생명을 품는다.


이것이 공감의 창발이다. 이것이 존재의 실현이다.


단 한 분자로는 불가능했던 것들. 모였을 때 가능해진다. 규모가 커질수록 의지의 본질이 드러난다. 물의 진짜 목적이 점점 명확해진다.




공감의 창발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의지와 반응이 만난다.

개별적인 의지가 있다. 축구 승리를 향한 열망. 그에 대한 반응이 있다. 함성. 이 둘이 만난다. 공감력이 형성된다. 임계치를 향해 쌓인다.


둘째, 공감이 또 다른 의지가 된다.

형성된 공감이 개인에게 내재화된다. 더 강한 의지를 촉발한다. 기존 의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단순히 응원하던 것을 넘어 유니폼을 입는다. 거리로 나선다. 북을 친다. 행동으로 이어진다.


셋째, 비슷한 의지들이 집단을 형성하며 상호 자극하고 에너지를 증폭한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지를 가진 개인들이 모인다. 집단을 형성한다. 서로의 반응을 통해 공감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축구 응원단.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넷째, 집단적 공감이 창발을 유도하고 새로운 존재 정체성 실체가 등장한다.

증폭된 집단 공감력이 임계치를 넘어선다. 순간 전환이 일어난다. 단순히 개개인의 합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가 창발한다. 축구 팀의 정체성을. 이기고자 하는 열망을


다섯째, 창발된 존재는 진정한 의지를 드러내고 규모에 따라 의지의 본질이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창발된 존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의지를 지닌다. 그 규모와 영향력에 따라 본질적인 의도를 점진적으로 드러낸다. 세상을 변화시킨다.




촛불집회를 기억한다.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추운 밤, 손에 든 촛불 하나씩. 비폭력 시위를 를 외쳤다. 이것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전 국민의 의지와 동시다발적 반응이 결합된 역사적 공감의 창발이었다.


그 에너지는 단순한 분노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재창발시켰다. 정의를 향한 집단 의지와 전 국민의 평화적인 반응이 만들어낸 집단 공감의 장. 그 강렬한 공감은 결국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개인도. 단체도. 하지만 함께였다. 천만 명이 함께였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한다. 붉은 악마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온 국민이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대! 한! 민! 국!"을 외쳤다. 이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전 국민의 의지와 동시다발적 반응이 결합된 역사적 공감의 창발이었다. 그 에너지는 단순한 기억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정체성을 창발시켰다. 승리를 향한 집단 의지와 전 국민의 열광적인 반응이 만들어낸 집단 공감의 장. 그 강렬한 공감은 결국 한국을 준결승까지 올려놓았다.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선수들도. 감독도. 하지만 함께였다. 수천만 명이 함께였다.


5.18 민주화운동을 생각한다. 광주의 시민들이 목숨을 건 저항.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의지였다.

이 의지에 전국민이 반응했다. 그 반응은 민주주의라는 실체를 창발시켰다.

혁명이란 공감의 창발이 만든 가장 극적인 실체화다.


한국을 생각한다. 임진왜란을 극복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극복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수많은 국난과 역경 속에서 개인을 넘어선 집단의 의지를 형성했다. 이에 대한 집단 반응을 통해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다.




철학자 로널드 드 소우사를 생각한다. 그는 말했다. 감정이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의미 질서를 창출한다고. 그 집합이 개별 감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형성한다고.

맞다. 나 혼자 느끼는 분노와 수만 명이 함께 느끼는 분노는 다르다. 질적으로 다르다.


신경과학을 생각한다. 거울 뉴런.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 내 뇌에서도 같은 부분이 활성화된다. 마치 내가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집단 속에서 이것이 증폭된다. 수천 개의 거울 뉴런이 동시에 작동한다. 공명한다. 하나의 거대한 뇌처럼.


사회학자 베르거와 루크만을 생각한다. 《현실의 사회적 구성》. "집단적 믿음이 곧 현실이 된다."

화폐를 생각한다. 종이 조각이다. 본질적으로. 하지만 모두가 그것에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 실제로 가치가 생긴다. 믿음이 현실을 창조한다.


국가를 생각한다.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 맞다. 국가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하지만 수천만 명이 그것을 믿으면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공감의 창발이 국가를 만든다.


감정 전염을 생각한다. Emotional contagion. 연구 결과가 명확하다. 한 사람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특히 집단 속에서. 한 사람이 웃으면 주변 사람도 웃는다. 한 사람이 울면 주변 사람도 슬퍼진다. 한 사람이 화내면 주변 사람도 분노한다. 미세한 반응들이 모인다. 작은 파동들이 합쳐진다. 어느 순간 거대한 파도가 된다. 새로운 감정 질서가 창발된다. 리더십도 창발된다. 아무도 임명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나타난다.




혼자서는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함께할 때 임계치를 넘었다. 그 순간 창발이 일어났다.

나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었다. 우리였다. 대한민국이었다. 새로운 존재였다.

공감의 창발은 의지를 존재로 완성시킨다.

존재는 공감의 창발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된다.

혼자서는 불완전하다. 함께할 때 완성된다. 집단을 이룰 때 창발한다. 임계치를 넘을 때 실체가 된다.


혼자서는 안되는 것이 함께할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