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을 내보이기

25. 8. 22. 일기

by 까마리

컨디션이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요즘.


이런 저런 생각들을 꺼내놓거나, '아 나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하고 싶지?' 라는 욕구가 생기거나,

잊고 싶지 않아서 일단 휘갈기듯 메모를 해두거나.. 하는 일들이 그래도 전에 비해 많이 생긴 요즘.


밀린 일들도 하나하나 재정비해서 본래대로(생산하는 삶)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까.. 하는 기분 좋은 막막함이 있는 요즘.


그럴수록, 요즘 나를 보면서 많이 하는 생각은.. '자꾸 다듬으려고 한다'.

이게.. 나의 고질적인 문제라면 문제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한데,

나는 여러차례로 생각을 곱씹어보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반추하는 걸 좋아한다.

어제 써놨던 글을 다시 읽으면서 '개판이군'하며 갈아엎는 것도 좋아하고


업로드 주기랄까, 그런거에 마음이 쫓겨 휘갈기듯 만들어 낸 것보다

이리저리 고심해서 꺼낸 것을 봤을 때는 뿌듯함이 크다.

그렇게 나온 건 나도 여러번 돌려볼 정도로 애정도 크고.

근데 이제 이게.. 욕심이 많아지면서 골치가 아파지는 거지.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한테는 그 플랫폼이 정말 잘 맞았던 플랫폼일까?


나는 프로젝트 단위로 뭔가 응집해놨다가 한꺼번에 꺼내는 것이 훨씬 잘 맞는다고, 지금은 느낀다.

그러니까..

매일 한 편씩 가벼운 내용을 그려내는 것보다

어떤 시리즈의 틀을 크게 잡고, 어떤 흐름으로 얘기할까 고민한다음에 배치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해내는

하루하루의 일기같은 컨텐츠보다, 신혼일기와 같은 하나의 묵직한 컨텐츠로 빼는 것이 내게는 잘 맞았다는 얘기다.

시리즈가 내게 잘 맞았던 것도 그런 부분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일할 때 성향도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대체로 전체를 보는 작업을 좋아하거든..

전체를 봐야 부분이 보이는 사람이라.


근데 이런 작업의 문제는, 너무 무거워진다는거다. 사람이든 컨텐츠든.

실제로 내가 퇴고를 거듭하며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거둬내는 일이다.

초안에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몽땅 다 적는다.

흐름같은거 생각하지 않고, '이 부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으로 정말 모든 걸 다 적고,

다음에 볼 때는 빠진 이야기가 없나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볼 때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

그러면 TMI 투성이고, 뭔 재미도 관심도 없는 얘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해놨어.. 라면서 다 지우게 된다.

그렇게 남는 것은 (나름) 굉장히, 간결해진다.

인스타그램에서 내보이게 되는 것들은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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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젝트 단위로 끊되, 호흡이 긴 작업을 좋아한다. 차라리 책으로 내는 일 같은 거(아직 안냈음 주의)

엘리자벳 데일리 작업이 재밌었던 이유는, 지면의 한계가 없어서였다. 인스타그램처럼 20장 내외- 이런 조건이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쭉- 가져가고, 없을 때는 간결하게.

그 호흡조절이 가능했다.


인스타그램 시리즈는 한 편, 한 편에 20장이라는 한계가 있고(심지어 전엔 10장이었자너..?)

이 다음에 어떤 반전이든, 설명이 나오지만 그거까지 이야기하질 못하고 끊기기 일쑤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들도 허다하다. (나는 그런 경우가 잘 없긴 했지만)

그게 어그로라면 어그로로 사람들이 몰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겠지만 글쎄..

나는 그런 어그로는 싫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직 배가 덜 고픈걸까. 고고하고 싶은 걸까.

그냥.. 그냥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은 걸..


신혼일기 작업이 재밌었던 건,

책 한 권에 내가 특히 재밌다고 느끼는 것도, 슴슴하다고 느끼는 것도, 적절히 섞여있고

그걸 한 호흡에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 에피소드 하나 보여주고, 내일 하나 보여주고, 이렇게 감질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흐름을 보여주는 것. 이 경험이 참 좋더라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

적고 있으니 마음이 좀 더 확실히 지는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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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자꾸 고치고 싶고 다듬고 싶고 긴 호흡으로 가져가고 싶고 하니까

자꾸 무거워진다-는 부작용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요즘 나의 마음, 나의 기록들도, 무겁다. 딥-딥-딥-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니 적긴 했는데, 나는 이걸 왜 자꾸 꺼내고 싶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얘기는 굳이 안하는게 좋을까.. 하며 고민하게 된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고 있으니 분명 A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무리는 B, C, D 로 끝나기도 해.

뭐를 어떻게 정리하지 싶은 와중에 벌써 시간은 또 한 달이 가버렸다.


이제는 조금씩 정리하고 싶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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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이 글도 여러번 퇴고하고 싶은거 걍 눈 딱 감고 올린다.

덧 2. 이 글도 다른 메모, 일기 한참 하다가 '무겁다 무거워.. 걍 휘갈기는 마음도 털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찾음.

자신의 일상, 감상을 이야기하는 분들의 글을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되었음.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일기(?)와 기록은 힘이 있어요.


나한테 필요한 건 이런 가벼움. 날 것을 그냥 드러내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 것.

그런 의미로 나는 몇 번이고 퇴고하는 글이든 만화든 영상보다

걍, 걍 떠드는 그 실시간의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기도 하다.


남편과의 대화 녹음이라든지, 친구와의 수다라든지. 뭐 그런 것들.

아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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