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도 용기가 필요하다

25. 7. 30. 일기

by 까마리

잠깐 멈춘 기록이 이렇게나 시간이 오래 흐르게 될 줄이야.

역시 쌓는 건 평생이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내가 계속 하고 싶다면 아무리 긴 텀이 있더라도 이게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닌 이상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은.. 그게 두려웠다면 이렇게 멈추면 안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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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핸드폰이 방전되어있었다.

덕분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바로 책상에 앉고,

간밤에 친구들이 쓴 블로그 일기들을 보고나니

그냥 나도 갑자기 툭, 기록하고 싶어졌고 내 블로그를 열어보니

카테고리 중에 이런 소소한 일기나 잡담하는 게시판도 없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아마 나는 그동안 많은 상념들을 만화로 표현하곤 했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었으니까 따로 남기고 싶은 글 같은 건 없었던 것이었겠지.

만화로 그리는 걸 잠깐 멈추니, 이제는 그냥 아무말이나 적는 글이 쓰고 싶네.

그래서 적어보고 있다. 아무말이나. 모닝페이지를 적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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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올리는 건 불특정다수에게 확성기로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이런 프라이빗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쓰고 싶어서 뉴스레터 형식의 메일링도 시도를 해봤었는데,

딱 이럴 때 그 분들한테만이라도 '요즘 멈춘 이유는 이러이러해요~' 얘기하고 싶어 시작했던 거였는데

그럼에도 쉽지가 않네.

친구한테 이야기를 꺼낼 때도 쉽지 않을 때가 있자나..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나 싶은 순간이.

그렇게 연락을 할까 말까.. 하면서 시간이 훌쩍 가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잡담이라도 꺼내는 순간에는 용기가 필요하니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큼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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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만드는 것을 멈추니까 다른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이 잘 보인다.

사실상 그렇게 남들이 만들어둔 것만 소비하고 지내게 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햐 대단하다 잘 만들었다 잘한다~

진짜 부지런하다 맨날 올리나

재밌다 세상엔 쓸데없고 재밌는 게 참 많기도 하군

남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그것이 공들여 마음담아 열심히 만드는 것도 있고

그냥 지나가다 싼 똥같은 것이라고 해도

어디서 불펌해서 복붙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해도(근절시켜야함 빡씨)

여하튼 만들어내는, 거기에 들이는 노력들이 참 대단들 하다.

노력이란게 뭐 구슬땀이 송글송글 나지 않아도

여하튼 시간과 마음이 드는 일이잖아.

무의 상태에서 보니 그냥 세상의 모든 것들이 대단해보인달까.

넘쳐나는 컨텐츠도, 걱정없어보이는 업계 상위권에서도 '그 다음..!! 그 다음..!!' 하면서 아둥바둥 다음을 만들어내는 것도,

매일 가던 산책길의 다리가 보수되고 새로운 길이 깔리는 것을 보는 것도

그걸 사람이 하나하나, 나의 아버지 정도되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피부가 까맣게 탄 인부들이 땡볕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문으로 보이는 출근하는 사람들도,

엄마오리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새끼오리들도, 참새들도,

물고기가 잘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수완 좋은 황새도,

자전거길을 위태롭게 건너는 지렁이도, 그러다 말라 비틀어져버린 지렁이에 가득 붙어있는 개미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나 뿐이군.

이라는 마음이 나를 좀 오래 괴롭혔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러하고.

에어컨 빵빵하던 사무실이 아닌 '에어컨을 켤까말까' 고민하는 집에서

무기력하고 상념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던 건

친구의 말을 빌려서, 그냥

지금이 지독하게 덥기 때문이라고 자위해본다.

이 더위나 무기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야 무수히 많지만은

그냥 그렇게 쪄들어가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 것 아니겠나 싶기도 하고.

그게 생각보다 길어져서 스스로도 몹시 당황스럽지만은,

옆에서 계속 재촉하고 탈탈 털기에 이번 여름은 참, 너무나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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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흐름대로 걍 적다보니

먼소리야 싶기도 하고 다소 좀 우울해보이기도 하지만

뭐가 되었든 이렇게 '적고싶다'는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이건 대단한 첫 발걸음이다.

그리고 지금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생각을 메모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그널이라고 본다.

꺼내기까지 시간은 조금 걸릴 수 있겠지만은.

이 모든 게 또 내게 어떤 양분이 될 걸 아니까, 재촉하진 않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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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모임 이후로 확실히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고,

짝꿍의 지극정성 보듬보듬에

그리고 이제는 정말 해야하는 외주일까지.

지독하게 엎어져있던 시간과

세상이 돌아가는 걸 지켜봤던 시간을

잊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다.

~하고 싶다~ 는 생각이 든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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