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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희 Nov 15. 2020

스무 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26)

대한축구협회 7년 만의 공채에 도전

대한축구협회의 7년 만의 공채                                                  

2012년 1월 코치직을 그만두고 4학년 2학기 복학과 동시에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교생실습을 통해 교직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었고, 축구 지도자는 국가대표는 아니더라도 프로선수 경력도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차별화된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안정적인 직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반학생들처럼 취업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편입 이후 봉사활동, 대학생 기자단과 같은 대외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고 뛰어나진 않았지만 TOE IC점 수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학벌도 좋아져 기본적인 스펙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취업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스무 살에 실패한 축구선수 출신이 이렇게 잘 해내고 있다.'는 인생역전의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근한 자신감과 함께 복학 준비를 하던 중 대한축구협회에서 통역으로 일하던 지훈이 형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이번에 공채를 뽑거든, 한 번 지원해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살펴보니 7년 만에 정규직 공채였습니다. '졸업할 시기에 7년 만에 선망하던 대한축구협회에서 공채를 뽑다니' 이건 마치 저를 위해 준비된 기회 같아 보였습니다.

      

  현재 성인 남자 국가대표팀의 지원인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지훈이 형과의 만남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보다 1년 먼저 고려대학교에 편입했던 축구선수 출신 형이 있어서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형의 싸이월드를 들어가 보았는데 거기에 지훈이 형이 ”형 나 다음 달부터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하게 됐어 “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입니다. 대한축구협회라는 말에 형의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니 축구선수 출신으로 운동을 그만둔 후 축구행정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제 소개와 만나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며칠 후 형이 석사과정을 하던 한양대에서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연락을 지속적으로 하며 형의 발전하는 모습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했는데 이렇게 귀중한 정보까지 받게 되었으니 저에게는 참 좋고 귀한 인연입니다.


기회는 가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도 찾아온다.     

  “기회가 왔다. 내가 아니면 누가 뽑히리.” 대한축구협회 공채에 서류를 넣고 서류전형 합격통지를 받은 후 교만하게도 당연히 최종 합격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선수 출신이었는데 다시 공부를 해서 고려대학교에 편입을 하고 해외봉사활동 2회, 정부 부서 대학생 기자단 등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 선발될 수밖에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 가지 염려가 되었던 것은 영어면접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얼마나 있겠어. 내 스펙이면 이 정도 영어만 해도 무조건 합격’이라며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합격할 수 있다며 자기 암시를 했지만 영어면접이 부담되어 친구들을 앞에 두고 연습도 하고, 교회 동생에게 부탁을 해서 피드백을 받기도 했지만 특별하게 나아지지 못한 채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Sorry.” 한국어로 이루어진 1차 면접에서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하지 못했기에 초조해진 상태에서 치른 영어면접에서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었습니다. ‘여성팬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안을 영어로 논하시오.’라는 질문에 열심히 답변을 하다 꼬여버린 저는 결국 “Sorry”를 외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영어는 자신감과 태도인데 실력도, 자신감도, 태도도 형편없던 저는 결국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대한축구협회 공채에 탈락하게 됩니다. 


  지훈이 형은 그때 입사하여 연령별 대표팀 지원업무를 담당하다 벤투 감독의 부임과 동시에 성인국가대표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끔 중계방송에 보이는 형을 볼 때마다 영감을 얻으며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공채에 떨어진 후 “계약직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다시 한번 면접을 보러 오라.”라고 대한축구협회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계약직?’ ‘내가 이방인으로 취급될 수 있는 그것을 조직에서 감내할 수 있을까?’ 대한 의문을 갖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계약직이라는 것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열정도, 패기도 없는 지원자였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탈락. 그때 저와 같이 계약직을 놓고 면접을 보아 계약직으로 일했던 직원은 능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계약기간을 연장했고 결국 2017년 이뤄진 공채에서 당당히 합격하여 현재 대한축구협회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휴학 후 축구코치를 하지 않고 영어공부만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왜 그때 공부를 하지 않고 축구코치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축구협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 사라진 뒤 자책하며 자문했습니다.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과 간절하게 축구협회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지 않았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때 축구협회에 합격했다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아직도 저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책이 그 꿈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데려다줄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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