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참는 값으로 바든 것
연봉, 참는 값으로 받는 것
1년 6개월 동안 신입사원으로서 교육과 훈련을 마친 뒤 보험영업지점의 지점장으로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점장이라고 해서 대단해 보이나 대졸 공채 영업관리직으로로 입사한 사람들은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맡게 되는 업무입니다. 그렇지만 지점의 장이 된다는 것은 그 지점의 성과를 책임지기 위해 회사로부터 조직운영에 대한 인사권과 재정관리 등 전권을 위임받아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이므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보험회사의 특성상 영업의 결과가 회사의 성장과 직결되는 만큼 영업의 일선에 있는 지점장의 첫 번째 역할은 지점에 할당된 책임액 즉,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맡은 지점에는 설계사분들이 20분 정도 계셨습니다. 보험설계사 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이미지의 여성 설계사분들을 모시고 영업을 했는데 책임액을 달성하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영업조직이니 성과만 잘 나오면 성과급도 많이 나오고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성과가 좋은 달은 '이보다 좋은 직장이 없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을 했지만 성과가 나쁜 달에는 죄인이 된 것처럼 상사를 피해 다니기 급급했습니다. 하루하루 목표대비 달성률이 공개되므로 매일 같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 영업압박이 가해졌습니다.
'연봉은 참는 값이다.' 부진한 지점장들이 모인 회의자리에서 한참 동안 설교를 한 본부장이 한 말입니다. 머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며 참는 값으로 월급을 받는 것이니 힘들어도 참고, 어려워도 참으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라고 합니다.
‘연봉은 참는 값’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참아 오셨던 것일까?.' 하는 마음에 그동안 참고 또 참으며 길러주시고 공부시켜주신 부모님께 ‘참는 값’으로 번 돈을 모아 안마의자를 사드렸습니다.
의미 있게 돈을 쓰고 나니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직장이 있고, 할 일이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도 잠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매일매일 더 힘들어하는 저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것일까?, 이걸 참아낼 수 있을까? 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갔습니다.
토끼 같은 리더가 되다.
전쟁터와 같은 보험영업의 경쟁 속에서 이모나 엄마뻘 되는 설계사분들을 교육하고, 관리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고 두 손을 꼭 잡고 부탁을 하며 설계사분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영업 세계의 이면을 알아가면서 조직의 목표 달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리더인 토끼 무리가 토끼가 리더인 사자 무리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영업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는데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100% 바른 일이라는 확신이 없으니 나약한 리더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프로축구선수는 경기력으로 평가를 받고, 그에 따라 보수나 명예를 얻게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누구나 프로입니다. 성과에 의해 평가를 받고 그에 따라 보수가 책정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짧은 계약을 맺은 프로 운동선수들보다 일반적인 사회인들은 직업적 안정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업무와 목표 그 이상을 해내야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였으므로 성과에 따라가 저조하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업조직이니 성과만 잘 나오면 성과급도 많이 나오고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었지만 보험업과 영업관리자의 업무에 대한 확신의 부족에서 기인한 나약한 리더십으로 인해 성과는 항상 신통치 않았고 상위기관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질책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면 출근을 해서 상사에게 보고 및 훈계를 듣는 게 일상이었고, 일과 시간 이후에는 스트레스에 시달린 선배들에게 끌려다니며 회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종기가 나서 병원에 입원도 하며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