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막혔다, 그래서 내게 해본 질문

왜 쓰냐, 뭘 쓰냐, 그래도 쓴다

by 일마사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윤곽이 잡혀갔다. 많지 않지만 틈틈이 적었던 글을 돌아보니 나름의 갈래가 보였다. 그 결을 잡아서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더 깊이감 있는 글은 쓰고 싶은 대로 짧은 시간에 나오지 않았다.


많지 않은 여유 시간에 글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집중해서 찾아보고 고치고 다시 쓰는 그 과정이 마음먹은 대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나름의 글쓰기 스타일은 있지만 전문 작가처럼 세련되게 쓰는 건 아니다 보니, 내 결을 살리면서도 독자가 읽기 좋은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휘갈겨 쓰던 나의 생각 메모조차 검열선상에 올라서 글이 나오지 않았다. 답답함만 쌓여갔고, 그 답답함의 정체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코칭을 말하고 싶었던 건 코칭을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이고, 운동과 건강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운동을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조직과 인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느낌이나 감각에 대해 쓰고 싶을 때, 그것이 좋든 싫든 지금 이 순간 나를 강렬하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감을 메모해 두고 나중에 다시 파고들어 생각을 이어가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안다. 나는 그 순간, 그 장면에 녹아들어서 강렬한 느낌과 생생한 감정을 동력 삼아 쓰는 사람이다. 그 흐름 안에서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정리할 때 비로소 만족스러운 글이 된다.

지금 나에게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이에 대해 서술해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 관심이 생기고, 더 잘 쓰고 싶고, 더 배우고,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지금 이 순간의 관심과 느낌, 알아차림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하나의 알아차림이 더 있었다.

나는 항상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현재를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늘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열렬히 살아가고 있다.

나만 말할 수 있는 것은?


트렌드가 빠른 업종에서 경력 내내 조직운영에 밀착해 온 배경, 그리고 본래의 기질과 관심사에 따라 쌓아 온 지식과 감각. 이 기질과 경험의 통합체로 내가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들이 나만의 언어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감각하는 것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유한 것 이상으로 나만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개인의 정체성이 확장되어 나만의 세계관이 되는 것일까. 아직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아직 정의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그 순간에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너머를 생각하고 탐색하는 자연스러운 시도. 그게 나의 고유성이고 새롭게 접할 때마다 반복되는 나만의 틀인 것 같다. 코칭도, 운동도, 일도, 철학과 종교, 심리학, 과학까지 흠뻑 빠져들면서도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건 자꾸만 ‘그곳을 넘거나 그다음을 생각하자’는 마인드 때문이었다. 불안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의 과정을 관찰하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답하며, 그 과정을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 그게 내가 나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준비만 하다가 영영 시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조급함. 마음이 달아오를 때 일단 움직이던 내 패턴대로 그냥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고, 하다 보면 뭐라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2주 이상 꽉 막혔다.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직면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 모든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께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길게 돌려 말했지만, 나만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편안하고 담담하게 쓰고, 그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