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각을 잡고 쓴 글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갈겨쓴 메모 같은 글이다

by 일마사

브런치 연재 이후, 예전에 써뒀던 메모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쓰고 싶어서 어딘가에 적어뒀던 것들이 꽤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동시에, 메모하는 순간이 불편해졌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그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메모를 했고, 글감도 부쩍 많이 떠올랐다. 퍽 성실한 편인 나는 영감이 오는 순간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아이디어들은 조금만 시간을 내면 내 생각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이 될 수 있다. 아마 1년쯤 후에 이 시기의 글을 다시 보면, 대견하면서도 어딘가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느껴져 슬쩍 부끄러워질 것 같다. 그게 불편함의 정체다.


브런치를 시작한 뒤로, 떠오르는 글감은 모두 ‘언젠가 올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 말인즉, 혼자 간직하던 생각을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다. 사진 한 장도 SNS에 올리기 전에 한참 고민하다 결국 닫아버리는 사람이, 생각을 공개하고 있다. 아직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작고 소중한 수준이지만, 그 작은 관심조차 반갑고도 불편하다.


‘일과 마음 사이’라는 주제대로 일과 관련된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코칭 철학에서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언젠가 책으로 엮고 싶다는 욕심. 내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공감해 주길 바라는 욕심. 그리고 솔직히, 조회수와 라이킷과 댓글이 늘어나길 바라는 욕심.


깊숙이 숨어 있던 관심 욕구를 건드리는 반응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그리고 그 욕심이 글을 고르고 쓰는 과정에 자꾸 끼어든다. 브랜딩을 의식하거나 전략적으로 쓰려는 마음이 순수한 기록을 방해한다. 나에게 욕심은 원동력이 아니라 발목을 잡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지금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가 되어 있었다. 조직도 코칭도 아니라, 글쓰기 그 자체. 이걸 알아차렸을 때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가소롭고, 그래서 귀여웠다.

AI에게 첨삭을 맡겨보기도 하고, 내 기록을 데이터 삼아 스스로를 분석해보기도 하고, 매거진 구성부터 앞으로 하고 싶은 일까지 연결해 보는 전략 미팅도 몇 번 했다. 그 과정 자체가 재밌고, 요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이 만족하는 글, 생각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외재화 사고방식이 강한 나에게 진짜 보여줄 수 있는 글은 각을 잡고 써야지 다짐한 글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갈겨쓴 메모 같은 글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과연 내가 나만의 정체성을 가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글을 쓰는 작가. 그 질문에 답을 얻고 싶어서, 브런치 글 끝에 독자 설문을 달아보려는 생각까지 해봤다.

코칭을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던 시절, 회사의 고민을 내 고민처럼 끌어안던 마음, 나만의 문제 해결법을 치열하게 찾아가던 그 시절, 그때 느꼈던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요즘은 글쓰기에서 온다.

과연 내가 이렇게 마구 써가는 글들을 언젠가 하나의 매거진이나 책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고, 이 과정을 이해하는 내가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