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자기 검열, 따뜻함 사이

타인을 향한 마음을 어디까지 표현할 것인가

by 일마사

오랜만에 길어진 머리칼을 보고, 정리할 때가 지난 것 같아 늘 가던 미용실에 갔다. 동네 미용실에서 다소 큰 미용실에 다닌 지 1년 정도 지난 듯하다. 미용실이라기보다 헤어숍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은 곳 말이다. 헤어숍은 동네 미용실과 달리 헤어 디자이너라는 분이 여러 직함으로 불리며, 보조하는 수습 디자이너가 붙는데 이 분들 역할 중 하나가 ‘머리 감기’인 것 같다.


‘괜히 오지랖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머리를 감아주는데, 손끝에서 굉장한 압력과 함께 시원함이 몰려왔다. 지압에 뒷목까지 마사지를 해주면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나른하고 만족스럽다. 극강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에 ‘정말 시원하다, 손맛이 최고다, 어쩜 이렇게 잘하시냐’와 같은 칭찬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꿀꺽 삼키고, 조용히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괜히 칭찬했다가 이분들이 더 열심히 하다 건초염으로 고생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가위질을 쉬지 않는 디자이너도, 시종일관 손끝으로 지압하듯 머리를 감겨주시는 분들도, 직업병이 있겠지.


생각난 김에 찾아보니 손가락 및 손목 질환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사무직과 마찬가지로 근골격계 질환이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나 관리법을 알려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프로가 일정한 수행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자기 관리 영역일 테고,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괜한 간섭이고 주제넘은 참견일 뿐이다.


그 감각은 직장에서도 비슷했다.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흔히 말해 짬이 좀 차면 대부분 적정한 비즈니스 매너와 교양과 상식으로 일정한 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선을 제대로 지키고, 내 일이나 잘하자는 마인드가 자리 잡히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좋게 말해 사회생활을 잘하는 법을 알게 되고, 나를 지키며 에너지를 관리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 나쁘게 말하면, 주변에 관심이 점차 시들해지는 것이다.


지나친 관심으로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들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에도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내 일보다는 회사와 조직의 일이 중요했고, 유관부서의 도움 요청을, 곤란함을 겪는 구성원을 지원하는 일이, 협업하고 있는 파트너들의 요구사항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 못하는 사람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고마운 존재’가 되는 곳도 분명 있다. 내가 있었던 곳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오지라퍼라는 말은 그리 긍정적 뉘앙스를 띠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주변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했다. 적어도 내 것을 제대로 못 챙긴다는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코칭을 공부하게 된 것도 다 ‘타인에게 영감의 순간을 제공’한다거나, 조직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도움 되는 동료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는 동안 나의 심신은 소진되어 갔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이 없으면 불안해졌다. 가족에게도 그랬다.


오랜만에 헤어숍에서 그때의 감각이 살아나는 게 퍽 반갑고 아쉬운 느낌이었다. 오지라퍼라고 험담의 대상이 되더라도, 그 한마디가 건네는 따뜻함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가 고마워하는 일을 할 때 하루를 잘 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자기 검열이 심하던 시절, 누군가에게 나의 오지랖을 걱정하는 말을 했더니 귀여운 오지라퍼라고 불러줬다. 그 시절, 그 감각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만나는 오지라퍼들이 귀엽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끔 예민할 땐 듣기 싫어지기도 하지만.


타인을 향한 마음을 어디까지 표현할 것인가. 그 질문에 아직 답은 없지만, 오늘 헤어숍에서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난 건 반가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