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말을 꺼낼 수 있는 자리인가

조언이 닿지 않는 사람에게, 코칭적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by 일마사

“조직을 이끄는 리더인데, 퍼실리테이터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내가 이 말을 꺼낼 수 있는 위치인지 잠깐 멈칫했다.


회사에서 실적을 고려한 조직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 한 조직을 총괄하는 리더에 대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그 자리에서 개인적인 소감을 보탰다.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동료는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면서, 그렇게 느낀 점에 대해 직접 조언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라포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이니 내 말은 귀담아 들어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게다가 그 리더는 단순한 조언이나 말로 수용하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자각해야 하는 부류로 느껴져서 더 말하기가 어려웠다.


과거에 이런 지점이 보이면 무턱대고 조언을 빙자해 내 방식을 강요하는 오만한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터라,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지금 상태에서 대화를 하면 이런 패턴으로 흘러갈 것 같다.


“체계를 잡고 조직의 기준과 룰을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정말 강점이 있습니다. 다만 퍼실리테이터 같은 느낌이 있어요. 조율과 진행자가 아니라, 필요할 때 이끌거나 제시하는 모습도 필요합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개발조직의 에고를 존중하면서 이끌어가려면…”
“그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코칭적 접근’이 가능하다면 리더 교육과 훈련, 전문 코치에 의한 코칭보다 짧은 시간 안에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이너게임』에서 저자는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오는 고객들을 이렇게 바라본다. 그들은 이미 숱한 강습을 통해 라켓의 위치, 발의 각도에 대해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교정이 안 되니까 찾아오는 것이다. 문제는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 사이의 부조화다.


그래서 저자는 고객에게 라켓을 휘두르는 동안 라켓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느끼라고 한다. 그 순간 라켓은 어디에 있었는가, 발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때의 느낌은 어떠한가. 무언가를 애써 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반복적으로 묻는다. 그러면 고객은 자연스럽게 습관을 고치고 새로운 스킬을 습득한다. 몰입의 상태로 넘어간다.


리더십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운영하는 그 순간,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 순간, 피드백을 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모습인가?”를 묻고 관찰한다. 그 상황이 지나간 뒤에 다시 되짚어봐도 좋다. 그래서 ‘더 나은 리더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묻기보다 그 순간으로 데려가서 감각과 반응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보게 한다.


‘지금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 무엇인가?’
‘최근 팀원과 대화하고 나서 뭔가 잘 안 됐다는 느낌이 든 순간이 있었나요?‘
‘그 대화를 하는 동안 본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순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어요? 실제로 했던 말과 달랐나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 내면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이래야 한다.'는 목소리와 단절된다. 그렇게 감각과 실제 반응의 간극을 직면하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간다. 나만의 리더십을.


최적의 리더십이나 소통 방법에 대해 내가 한마디 보태봤자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나는 그 사람에게 맞는 리더십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수만큼 다양한 모양이 있다고 하니까. 마치 성격이나 인격처럼.


교육이나 훈련, 조언이 잘 통하는 사람은 타인의 언어를 듣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거나, 일단 듣고 맞춰 실행해보는 부류다. 그런 사람은 희소하다. 교육 이후에 변화되는 사람들의 수를 보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 많은 시대에, 대부분은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주관성이 강한 편이다. 그런 사람들은 몸으로 겪고 느끼고, 적용해보면서 확신을 얻어간다.


조직의 교육훈련만이 아니라 변화와 조직관리 과정에서도 코칭의 언어가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 코칭처럼, 아주 구체적인 그 순간을 함께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몸으로 겪고 느끼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을 텐데, 그런 여유가 없는 조직에서 그 순간을 앞당기고 수용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절한 사람에게 코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코칭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래서 HR이나 리더들은 코칭적 접근, 혹은 코칭적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리더에게 어떤 코칭 대화를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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