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만드는 관계, 관계가 만드는 기대
민지 선생님과 코칭을 공부하던 시기, 우리는 가끔 불만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 불만은 누군가를 향한 것이기보다는, 코칭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어색함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런 대화는 대부분 건전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여러 주제 중에서도 유독 자주 돌아왔던 이야기가 있다.
'코칭이라는 용어와 그 의미'였다.
어느 날, 나는 민지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코칭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느끼기에도 한국에서 코칭은 너무 직관적으로 '밀착된 지도'나 '훈련 과정이 포함된 교육'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자격 과정이나 실습에서 강조하는 코칭의 철학과는 꽤 거리가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 말은 단순한 불평이라기보다는 코칭을 진지하게 공부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위화감에 가까웠다. 민지 선생님도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코칭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는 게, 한국에서는 코칭의 확산을 어렵게 만드는 태생적인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다른 말로 번역하거나, 아예 다른 방식의 브랜딩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순간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코칭의 확산을 고민하는 수많은 논의 속에서 정작 '이 단어 자체'에 대한 질문은 거의 등장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코칭'이라는 말은 묘하게 무게가 있다.
누군가 옆에 붙어 하나하나 교정해주고 성과가 날 때까지 책임지는 역할.
친절하지만 분명 위계가 느껴지는 관계.
코칭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접해본 경로를 떠올려보면 대부분 스포츠와 교육 현장인 것 같다. 입시 코칭, 학습 코칭, 퍼포먼스 코칭.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장면에서 코칭은 '효율적인 지도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언어가 조직과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코칭연맹(ICF)이 정의하는 코칭은 분명하다. '코칭은 가르치거나 조언하는 일이 아니라, 고객의 사고와 선택을 촉진하는 파트너십이다.' 주도권은 코치가 아니라 고객에게 있다.
그런데 이 정의는 이상하리만큼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코칭을 받는다'는 말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배우고, 교정받고, 방향을 제시받는 경험으로 쉽게 번역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저 이번에 임원 코칭 받아요."
이 문장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가?
A: 임원님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옆에서 질문하는 사람
B: 임원님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전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B에 가까운 장면을 그릴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코칭을 이야기했을 때 활용하는 맥락을 떠올려보면 아마 이런 경향이 더 강할 것 같다. 그게 바로 '코칭'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코칭 자격 과정과 현장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 생긴다. 말로는 자율과 주도성을 이야기하지만 관계의 감각은 쉽게 교육과 훈련 쪽으로 기운다. 코치 교육에서는 이렇게 배운다.
"조언하지 마세요. 질문하세요."
"답은 고객이 가지고 있습니다."
"코치는 전문가가 아니라 파트너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고객: "코치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치: (속으로) 조언하면 안 되는데... 질문을 해야 하는데...
고객: (속으로) 왜 답을 안 주지? 코칭받으러 왔는데...
이 어색함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언어와 기대가 어긋난 결과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코칭을 더 잘 설명하는 방법보다 코칭이라는 언어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언어는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문화이고, 관계이고, 그 자체로 인식에 따른 기대가 투영된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이미 '어떤 관계가 허용되는지'를 미리 정해버린다. 예를 들어 '상담'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심리적 어려움을 다루는 전문적 관계를 떠올린다. '멘토링'이라고 하면 선배가 후배에게 경험을 나누는 관계가 그려진다.
그렇다면 '코칭'은?
한국에서 이 단어는 여전히 '가르침'과 '지도'의 영역에 더 가깝게 작동하는 듯 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품고 있다.
혹시 코칭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아직 충분히 로컬라이제이션되지 않은 채 교육과 훈련의 감각 위에 얹혀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칭의 혼란은 코치의 역량이나 질문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문화가 어긋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언어를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약속하는지는 더 분명해질 수 있다.
민지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 나는 코칭을 정의하기 전에 코칭이라는 말부터 의심해보는 중이다.
그 대화가 오가는 속에서의 관계, 장면, 기대가 있을텐데 계속 '코칭'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혹자는 이미 검증 끝나고 다들 잘 사용하고, 그렇게 확산되어 가는데 왜 이런 의문 혹은 인식 연구 같은게 필요하냐 묻기도 하지만 그건 잘 알고 잘 활용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코칭을 더 잘 설명하는 방법이 아니라 코칭이 아닌 다른 이름을 찾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혹은 적어도 '코칭'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경험해온 '코칭'은 스스로 기준을 세우도록 돕는 관계였나요?, 아니면 누군가의 기준에 더 잘 맞추기 위한 지도나 훈련에 가까운 경험이었나요?
그리고 만약 후자였다면 그건 코치의 문제였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코칭'이라고 부르는 그 말 자체의 문제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