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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Apr 15. 2024

간병하는 자는 외롭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져 이제는 혼자 사실 수 없어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하고 여러 절차 때문에 일주일간 시어머니 집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시어머니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냥 한나절이나 하루 이틀 만날 때와는 너무 다르다고 했다.


밤에 잠도 잘 잘 수 없고 하루 종일 반복되는 이야기에 응대해야 하고 도둑 취급 당하는 일등 치매 환자가 하는 비슷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어느 정도 공감도 하고 힘들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이제야 온전히 를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사실 이 친구는 다른 누구보다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힘들겠구나 했지만 피상적이었다는 걸  들으니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리고 엄마 흉을 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겠구나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의 이상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운 것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온전히 이해받기 힘든 데서 오는 외롭고 서러운 마음이 컸다. 치매환자와의 에피소드는 사실 말로 하면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린다. 정말 X을 벽에 칠하고 폭력을 쓰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환자가 그러는 거니 무시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일매일 수 백 번씩 반복될 때 환자라는 걸 알지만 화가 나고 인내심이 바닥나 버린다.


치매 환자가 늘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아니다. 평생 갖고 있던 고상한 말투나 의례적인 인사치레는 무의식적으로 하시기 때문에 잠시 만나는 사람이나 전화 통화만 하는 사람들은 ‘괜찮네. 치매가 심하지 않구나. 같이 살 만하겠네’, ‘저렇게 멀쩡한데 어떻게 요양원에 모시니’ 이런 말들을 실제로 들었다.


최소한 1박 2일 정도는 같이 지내봐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반복적인 말들과 이상 행동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엄마를 생각해서 주변에는 말하지 못하는 훨씬 많은  상황들이 있다. 그런 걸 빼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결국은 나 자신의 힘듦을 이해받기 위해 엄마의 이상행동들을 이야기하고 나면 나 자신도 같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기분이 든다.


엄마를 이상한 사람 만들고 자신을 희생하는 효녀로 포장하는 사람같이 느껴져 자신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 또한 간병하는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같이 살지만 엄마와 큰 상호작용이 없는 남편과 아이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문제로 실랑이를 할 때였다. 감기에 걸리건 말건 영하의 날씨에도 7부의 여름 바지를 계속 입고 나가시게 해도 괜찮다고 남들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버틸 때까지 버텼다. 그래도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코로나 시기라 감기라도 걸리면 고3 아들과 온 식구가 감금되고 검사를 받아야 하는 힘든 시기였다.


결국엔 내 화가 폭발하고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평생 내 말은 한 번도 듣지 않지. 엄마 말만 옳지” 이러며 케케묵은 감정까지 덧붙여져 이성을 잃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때 옆 방에 있던 아들까지 와서 “할머니, 엄마 말 좀 한번 들어” 하면서 조금 큰 소리를 냈다. 밖에서 들을 땐 힘없는 아픈 할머니를 괴롭히는 딸과 손자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진짜 멀리 떨어진 방에 있던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딸아이가 와서 둘 다 아픈 할머니한테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아들은 ‘누나가 뭘 알아, 누나가 뭘 했는데 “하고 딸은 딸대로 할머니는 환자지 않느냐 하며 싸웠고 결국 서로 욕까지 하며 크게 감정이 상하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가까이 있어도 이렇게 이해받기 힘든 일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병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는 환자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간병인이자 딸인 나도 힘들다 보니 자주 감정적이 되곤 했다. 참고 달래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되지 않는 상황들에 많은 순간 화가 다.


남편도 “네가 이해해야지. 엄마는 환자잖아”라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매 시간 모든 것을 챙기고 돌보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엄마는 2년간 스스로 물 한잔을 떠 드실 수 없을 정도로 단기 기억 능력이 없었다. 냉장고 위치를 알려드려도 매번 물어보셨다. 그런 식으로 늘 뭔가를 찾으시면 찾아드리고 뒤돌아서면 또 뭔가를 찾는 일의 반복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자주 짜증 내고 뭔가 가르치는 투가 되어버린 나보다 어쩌다 한 번 같이 외식을 하고 좋은 말만 하는 외삼촌을 훨씬 좋아했다. 아마 간병하는 자녀들이 겪는 공통적인 일일 것이다. 간병하다 보면 화를 내기도 하고 잔소리도 하다 보니 그 자녀가 고맙기는 해도 싫은 감정이 생긴다. 정신이 온전하시다면 '쟤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하겠지만 판단능력이 사라진 치매환자에게는 그저 싫은 감정만이 크게 자리 잡게 되는 것 같다.


처음 엄마를 모시고 올 때는 ‘그래 같이 살면서 묵은 감정도 풀고 엄마와 잘 지내봐야지’ 하고 설렜었다. 이제야 엄마와 편안하게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가라고 마지막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본인 집에 가겠다고 대책도 없이 짐을 싸서 나가버리셨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무 차나 타려고 해서 혼비백산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정말 갖은 방법을 써서 그 행동은 멈춰서 한 시름 놓으니 이제는 매일 돈이 없어졌다며 모든 장과 서랍을 뒤집어 놓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자다 깨서 현관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해서 아들의 수능 전날은 정말 피가 말랐다. 거실에서 엄마를 감시하느라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이루 다 말하기 힘든 이런 일들은 치매 카페의 회원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치매 카페를 찾아볼 마음의 여유도 힘도 없었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고 나서야 찾아보고 위로도 받고 정보도 얻고 있다. 간병하는 자식만이 느끼는 다른 형제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아픈 부모에 대한 안타깝고 애처로운 마음과 나를 힘들게 하는 거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 감정에 지치고 힘들어한다.


정말 외로웠다. 지나고 나니 외로움이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다 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답답함이 컸다. 친구가 시어머니와 일주일간 있어보고 이제야 나를 제대로 이해하겠다고 하니 그 당시의 내가 좀 애처롭다. 결국 아무도 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그 시간을 길게 보내지 않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본인도 몸이 아프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다들 공감해 주는 척이라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근데 그게 길어지고 만날 때마다 반복되면 어느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만은 잊고 싶어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차츰 혼자만의 방에 갇히게 되고 그 속에서 오는 절망감과 우울감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


나도 2년이 되어갈 무렵에는 ‘이러다 내가 망가지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커져갈 무렵 엄마가 친척집에 가서 고관절이 골절되시고 그 일을 계기로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와상환자가 된 엄마를 마주하기 고통스럽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매일 되뇐다. 그래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자식의 마음은  또다시 나를 외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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