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을 만나 대화하던 중 자신이 피아노나 미술 같은 예술분야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부모가 지원해주지 않아 못 했던 게 너무 속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지금도 피아노를 치느냐고 물었더니 피아노를 팔아서 치지 못하고 키보드가 있지만 아들 방에 있어 꺼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너무 단호하게 “그럼 전공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진짜 좋아하면 지금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대화를 하고 집에 와 남의 일에 너무 강하게 내 의견을 이야기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꼭 전공해야 할까? 그건 아닌 거 같다. 그토록 좋아하는 일이라면 난 매일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그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난 아마도 그 지인보다 피아노도 훨씬 못 치고 그림도 잘 못 그리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낡아빠지고 소리도 좋지 않아 야마하로 바꾸고는 싶어도 피아노를 버린다는 생각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네 식구가 살기에 비좁은 집이었지만 그 커다란 피아노는 늘 안방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식구들도 내가 피아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에 피아노를 처분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처럼 전공하지 못했지만 피아노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해 뒤늦게 피아노 치는 과정을 책으로 쓴 작가들의 책도 모조리 다 읽었다. 김겨울의 <아무튼, 피아노>, 임정연의 <피아노 시작하는 법>, 이나가키 에이코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홍애나의 <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등등 전공자 아닌 사람들이 피아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책들을 발견하면 같은 마음을 수다 떨 곳을 찾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지금 생각해 보니 한시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너무 재능이 없었기에 누구에게 글을 쓴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항상 일기를 썼고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기를 즐겼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의식은 없었지만 나의 관심은 늘 책과 글쓰기에 있었다.
좋아하는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가 오면 나같이 게으른 사람을 하루에 두 번도 도서관에 가게 만들고 인터넷 서점에 매일 접속해 어떤 새로운 책이 나왔는지 살펴보고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책이 무언지 찾고 책을 읽다가 작가가 인용하거나 소개하는 책들을 검색해 본다.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하고 전공하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좋아하는 일이라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 그것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하지 않을 때 내 삶이 공허하고 의미가 없었다. 나의 일이라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전공을 했는지 직업으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근에 재밌게 보고 있는 <굿 파트너>라는 드라마의 작가가 변호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 작가가 치열한 직업인으로 살면서도 글을 쓰면서 한숨을 쉬었겠구나, 많이 위로받고 행복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직업을 갖고 어떻게 글까지 썼냐고 하겠지만 그게 그의 숨구멍이고 안식처였기에 어떻게든 매일 조금의 시간이라도 내고 그 일과 만나야 했을 것이다.
내가 피아노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거다. 가장 힘들었던 2020년에 피아노를 제일 많이 쳤다. 매일 쳤다. 갑자기 쓰러지신 아빠에 대한 휘몰아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피아노 치면서 엉엉 울기도 하고 아빠와의 추억도 떠올리며 어떻게든 나를 추스를 수 있었다.
다섯 명의 식구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세계였고 위로였다. 나중에 한가해지면 하는 게 아니라 힘들고 바쁠 때 더 간절히 생각나고 그곳으로 가고 싶은 것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인 것 같다.
감히 나같이 재능 없는 사람도 글을 써도 된다는 걸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보고 알게 된 후 일기장이 아닌 노트북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 내 가슴은 심하게 뛰었다. 갑자기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오를 때는 빨리 쓰고 싶어 가슴이 뛰고 손이 벌벌 떨렸다. 시시한 글이나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부끄러워서 쓰고 싶지 않았지만 진짜 좋아하는 일이 확실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 털어놓는다.
브런치라는 걸 알게 되고 지원할 때도 그렇게 설레고 몸이 떨렸었다. 지금도 갑자기 쓰고 싶은 것이 떠오를 때면 여전히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전공을 하고 직업이 되어야만 그걸 해도 된다는 자격증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깨닫기도 전에 난 이미 그 일들을 매일 하고 있었다.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많은 사람들,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이렇게 모여 글을 쓰고 시간을 쓰는 이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설레고 한 줌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쉬지 않고 할 수 있다.
돈이 되지 않지만 이렇게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은 독서와 글쓰기, 피아노, 또 마음은 있지만 아직 그만큼 매일 하지는 못하는 그림 그리기가 있다.
옛날 몇십 년 전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함을 오랜만에 열어봤더니 내가 남편에서 보낸 카드가 있었다. 결혼할 때 물건을 합치면서 남편이 나에게 받은 편지와 카드도 같이 보관하게 되었다. 카드와 편지지, 봉투 모두 내가 만든 거였다. 친구들의 편지나 카드에도 내가 만들어 준 카드가 좋았다. 예뻤다는 내용을 보니 그때도 그렇게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남편에게 보낸 카드
내가 매일 하는 일이 나를 말해준다. 그걸 지인과의 대화에서 깨달았다. 돈도 되지 않고 남들이 쟤 뭐 한다고 저렇게 혼자 쏘다니고 책 읽고 남들이 읽지도 않는 글을 쓰느냐고 해도 난 그걸 멈출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일의 결과물이 나에게도 시원찮게 느껴지는 많은 순간 열등감과 자괴감 때문에 괴로워도 그만둘 수가 없다.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