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에 무릎뼈가 부러져 깁스한 지 3주가 돼가고 있다. 앞으로 3주간 더 깁스를 하고 있어야 한다. 처음 2주간은 다친 부위가 붓고 아파서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해서 거의 앉아서만 생활했다. 그 후에 통 깁스를 하고 조금 디디며 걸을 수 있게 되니 살만 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9월인데도 34~5가 넘나드는 날씨에 땀이 차고 자주 씻기도 어려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간도 소중한 인생의 한 시기인데 이렇게 짜증만 내며 보낼 수는 없었다. 계속 앉아서 텔레비전보고 핸드폰만 하는 거에 한계가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심심해야 놀이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밖으로 돌아다니고 놀러 다니느라 조금 뜸해졌던 그림 그리기와 피아노 치기를 더 자주 하게 됐다.
얼마 전 딸의 소개로 1996년 일본드라마인 <롱 베케이션>을 봤다. 그 유명하다는 기무라 타쿠야가 나오는 일드인데 내가 20대였던 바로 그 시기에 20대를 보내는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꿈을 이루는 내용이라 순식간에 몰입해서 봤다.
마지막 편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힘겹게 버텨 결국 이루어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식상한 반복에도 늘 마음이 아리고 감동을 받는다. 그들의 꿈이 아름답고, 그 꿈을 지키느라 여린 마음에 받은 상처가 나에게도 전해지는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하게 되는 청춘도 아프게 아름답고 끝끝내 한 발자국씩 다가가 결국 꿈을 이루어 내는 청춘도 모두 눈부시게 아름답다. 나는 매번 같은 주제에 감동한다. 내가 아직도 그 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걸까? 내가 그 시기를 확실하게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스토리가 매번 그렇게 강렬히 와닿는지 모르겠다.
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한 피아니스트 세나에게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작은 기적을 선물하는 미나미 같은 사람이 있어 부러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는 그 작은 기적이 꿈 앞에서 주춤거리고 뛰어넘지 못해 좌절하던 세나에게 마지막 벽을 깨뜨릴 힘을 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지켜온 꿈의 마지막 순간을 견디지 못해 좌절하고 멈춘다. 피아노를 포기하고 백화점 넥타이 매장에서 일하던 세나의 텅 빈 눈동자를 보고 마음 아파하던 미나미는 자신이 그의 피아노 선율에 얼마나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는지를 기억해 낸다.
인생의 가장 비참한 시기에 있던 미나미에게 들려준 세나의 피아노가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그 곡을 일주일 만에 연주해 내는 기적을 만들 낸다. 나도 바로 그 곡의 악보를 구했다. 곡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나도 며칠 만에 미나미만큼 치게 되었다.
<롱 베커이션> 세나의 피아노
더워서 땀이 줄줄 나는 와중에도 흠뻑 빠져 그 곡을 연습했다. 이 곡을 연주하는 순간마다 세나와 미나미의 아름다운 청춘과 그 시절의 나에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2024년인데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나도 같이 1990년대로 돌아간다. 그때는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잘 모르고 몰라서 노력도 하지 못한 채 그 언저리만 맴돌던 아프고 아름다웠던 나의 20대가 자꾸 생각난다.
그렇게 한참 피아노도 치고 지치면 인스타그램을 열어 내가 팔로우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구경한다. 수없이 많은 그림들을 캡처하고 추천으로 뜨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보면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맘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그 작가가 사용하는 색연필계의 샤넬이라는 까렌다쉬 루미넌스 색연필을 검색해 보고 다리가 나으면 구경하러 가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간다
아무리 맘에 드는 작품이라도 남의 것을 따라 그린 그림은 그다지 흥미롭지 못하다. 불안정한 선으로 어설프게 그려도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직접 보고 색을 찾아내서 그린 그림이 자꾸 보고 싶고 애정이 간다. 많은 작가들의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는 얻어도 그림은 그냥 내 멋대로 그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오늘도 사진 갤러리에서 얼마 전 일본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언제 다리가 나아서 또 이렇게 여행을 가나 하다가 그때 먹었던 라멘과 음료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연필과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는데 무척 즐거웠다. 복숭아 음료에 맞는 색을 찾아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는데 외출 준비를 하던 딸이 “엄마는 혼자서도 진짜 잘 논다. 피아노 치고 그림 그리고” 하며 웃는데 기분이 좋았다.
일본 여행 중 먹은 음식
아프다고 징징대며 가족들을 괴롭히지 않고 혼자 잘 노는 모습을 보인 게 스스로 대견했다. 물론 덥고 힘들다고 가끔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취미들이 있어 이 힘든 시간을 나름대로 잘 지나갈 수 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에 ‘초보자가 될 용기만 있다면 뭐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마음에 남았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열심히 해서 전시회를 했다, 책을 냈다, 공연을 했다는 중, 노년의 대단한 분들의 소식이 매스컴에 나온다. 그런 분들이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저 정도가 아니라면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절망감을 주기도 한다.
나도 아마 이런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면서 ‘역시 저런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었는데 잠시 감춰져 있었던 거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야‘라고 합리화하면서.
내가 하는 이 모든 시도들이 날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렇게 더위도 잊을 만큼 즐겁게 보낸 이 시간들,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을 불러일으킨 이 시간의 힘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