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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Nov 26. 2024

모닝 페이지를 쓰면 생기는 일

2019년부터 모닝페이지를 쓴다. 이 일을 계속 붙잡고 이어나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우울과 불안의 우물에 빠질 때마다 나를 건져 올려주는 동아줄이 되어준다.


나를 일으켜 세워 한발 한발 나가기 위해서, 그 길에서 아름다운 것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마술 지팡이 하나를 우연히 갖게 되었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이 단순한 일이 매일 더 깊은 우물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마음을 잡아준다. 이 많은 시간을 우울과 무의미의 미로를 헤매다 소진해버리지 않게 잡아줬다.


사람들의 말과 눈길에서 나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았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해서 그들의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와장창 박살 나는 약하디 약한 자아를 갖고 있었다. 그런 일은 현실 속에서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해 있지도 않은 인터넷 댓글에서도 TV속 누군가의 말속에서도 나를 찌르고 점검하게 만드는 것들을 발견하는 예민한 능력이 있었다.


그 말들에 비추어보며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건가?' 뇌화부동하며 순식간에 나의 것을 다 던져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귀 막고 보지 않을 때라야 나를 지킬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세상의 문을 열면 온갖 것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며 내 뺨을 후려치고 옷자락을 잡아 끌어내리는거 같았다.


그 손을 뿌리치고 다시 옷을 추슬러 입으며 그래도 난 내 길을 잘 가고 있다는 믿음을 부여잡기란 얼마나 힘든가? 그게 싫다고 소로처럼 숲 속으로 들어가 자연만을 벗 삼아 살 용기도 없다.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날 몰입시킬 일이 필요했다. 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 그 누가 뭐라 하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시선을 거두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 아침마다 쓰는 모닝 페이지가 큰 역할을 했다. 모닝 페이지란 것을 처음 안 것은 줄리안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가 ‘영적인 라디오’라고 표현하는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것은 주의를 집중하는 행동이고 주의 집중을 하면 언제나 그 보상으로 치유가 일어난다고 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도 모닝 페이지의 장점을 계속 이야기한다.

“우리는 더는 감추어져 있던 그런 감정에 습격당하지 않는다. 모닝 페이지를 통해 힘든 감정을 탐색하고 표현하면서 우리는 진실성이라는 가치 있는 예술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모닝 페이지에 우리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나면 곧 세상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좌지우지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예전에도 일기는 썼지만 모닝 페이지와는 달랐다. 일기에서조차 열등감을 자극하는 일과 자존심 상하는 일은 자세하게 적지도 못했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 사람들에게 실망했다고 두루뭉술하게만 썼다. 세세하게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거침없이 3페이지 정도를 써나가라고 한다. 스스로 검열할 틈도 주지 말고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거침없이 쓰면 나도 몰랐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떠오르곤 한다. 나중에 찢어버려도 좋고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쓰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장 내밀한 감정을 쓸 수 있다. 그냥 그렇게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많은 치유가 일어난다.


사실 일기를 쓰면서도 허세를 부리거나 숨기는 일이 많았다. 그 작은 차이가 감정의 원인과 진정한 욕구에 대면하게 해 준다. 아주 깊고 세밀한 감정을 들여다보면 엉뚱하게 타인이나 세상 탓을 하는 것을 그만두고 늘 걸려 넘어지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을 알게 되면 스스로 통제가 가능해진다. ‘내가 인정받고 싶었구나,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 돋보이려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구나’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고 할때 내가 삐뚤어지는구나' 하며 감정의 층에 한 겹 더 들어가 이해할 수 있게 되자 과잉 감정이 일어나 수동공격을 하거나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빠른 단정을 내리기 전에 멈출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아지자 자존감도 올라가고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상황과 사람들을 통제해야 내 영향력이 커지고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되자 더 큰 힘이 느껴졌다. 내가 단단해지고 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굳어온 생각 회로와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은 어느 날 결심 한 번으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요동치고 두려움에 떠는지, 열등감이 자극되는지를 알아야 그 속에 숨은 나의 진정한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그런 자동적 생각회로와 습관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의 회로에 갇혀 상대를 비난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전에 그를 이해하고 친절한 마음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


늘 걸려 넘어지던 같은 지점이 뭔지 명확해지자 해결방법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일에 소진하던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일과 생각에 더 많이 기울일 수 있게 준다.



모닝 페이지를 쓰며 정신없는 생활에 치여 잊고 있었던 다짐들을 기억해 내고 다시 생활에 가져오는 일을 반복할 수 있다. 쓰다 보면 잊고 있던 좋은 것들이 생각날 때도 많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일들을 도모하는 시간이 된다.


해보고 싶던 일, 가보고 싶은 곳,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 등등 재밌는 일들이 스르륵 그냥 떠오를 때가 많다.


이토록 작은 일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아침마다 노트를 마주하며 모닝페이지를 쓰다 보면 기대하지 않던 아이디어나 문장을 써내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싶어 진다. 아침에 쓴 모닝 페이지를 저녁에 읽어보면 내가 썼는지 의심스러운 생경한 문장들이 있어서 재밌다. 아침의 나를 저녁의 내가 신기하게 볼 수 있는 기록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행복해진다.


나에게서 솟아나는 공짜 행복이 신기하다. 늘 누군가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거나 좋은 식당이나 장소에 가서 소비적인 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만족감과 행복이 이렇게 쉽게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좋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나를 제대로 알고 내 생각대로 살아보는 그런 장이 될 거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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