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를 쓴 책도 재밌다.

-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읽고

by 박수종

내가 발견하고 느낀 사실들을 나중에 책 속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이야기도 그랬다. 특정 사진에서 특별하게 느끼는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에 쓴 적이 있었는데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견했다. 그럴 때 기분이 좋고 반갑다.


얼마 전 읽은 진은영 시인의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는 책에는 이런 포인트들이 많아서 오래전 나와 아주 잘 맞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저자가 읽은 책 이야기들을 쓴 책인데 재밌는 부분이 많아서 다시 찾아보는 책이 되었다.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사진에 대한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밝은 방>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책이야기에서 나온다.


"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세부 사항이 말을 걸며 나만 아는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 경우가 있다. 사진의 한 부분에서 '마치 화살처럼' 날아와 나를 꿰뚫고 내 마음을 물들이는 요소가 푼크툼이다. 이 하찮은 세부 사항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진을 사랑하게 된다. "


남들에겐 그저 일상적인 의미로 보일 뿐인 사진에서 나만 발견할 수 있는 강렬한 여운과 감정이 생겨나게 만드는 요소가 푼크툼이라고 한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희미한 감정이라든가, 이유도 모른 체 아련한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다.

친구가 찍은 같이 갔던 식당 사진을 그렸다.


내가 그리려고 선택한 사진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그 감정까지 그림에 스며들어선지 내 그림을 볼 때 나만 아는 느낌이 몽글몽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즐겁다.


“사진 속에서 우리 각자를 찌르는 개별적인 독특함에 사진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내용에 동의한다. 친구들과 어딘가에 가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각자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공유하다 보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이 생각보다 예뻐서 놀랄 때가 많았다. 아름다움은 어디든지 숨어있다 발견하는 자들에 의해 드러나는가 보다. 그의 서사와 영혼이 찾아낸 것들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딸이 찍은 사진을 그렸다.


이 책에서 발견한 내용 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의 인터뷰에서 “작가로서의 특별한 야심 없이 시 하나가 완성되면 다음번에는 어떤 시를 쓸까 그 생각에만 빠져 지내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회고했다”는 글을 봤다.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술도, 커피도, 여행도 안 한다. 소설에 대한 생각을 굴린다”라는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의 삶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평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 대한 생각과 실천으로 꽉 찬 일상이 그를 그런 멋진 세계로 데려다 주나 보다. 그런 대단한 작품이 어느 날 영감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대단한 예술가들은 늘 영감에 가득 차 있어서 기행을 일삼다가도 어느 날 마음만 먹으면 작품이 짠하고 나타난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런 특별한 예술가를 다룬 영화를 많이 본 탓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작품 외의 다른 부분을 과감히 제거한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내가 여러 번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한 책 이야기도 나왔다. 비록 읽진 못했지만 늘 읽고 싶었던 책을 작가의 시선으로 집어낸 부분 위주로 읽다 보니 다시 시도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푸스는 자신의 시가 괜찮은지를 물었지만 릴케는 물음의 순서를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고 답한 것이다.

가령 좋은 가수가 되지 못할 바에는 가수가 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확실히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필연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작가라는 곤경, 가수라는 곤경, 화가 또는 배우라는 곤경, 필연성을 하나의 이름 아래 주어질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생겨나는 위대한 속성이다. “라는 내용이 와닿았다.


내가 젊을 때 생각하고 좌절한 그 부분을 릴케가 바로 잡아준다. 잘하지 못하면 예술가가 되기를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작품 하나 하나로 평가받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지 못한다면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릴케는 그런 고민을 하는 젊은 시인에게 반대로 생각하라는 답을 준다. 많은 곤경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먼저 고민하라는 말이다. 근데 이 책을 쓸 때 릴케의 나이가 고작 28세라고 하니 놀랍다. 너무 늦게 도달한 조언이지만 나에게도 희미하게나마 답이 되어준다.


지금의 나에게 와닿는 내용이 많아 책이 끝나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관계에서만 세상의 의미를 찾지 말고 외로움 속에서도 더 큰 것을 찾을 수 있다는 말들도 나에게 위로가 됐다. 관계에 의미를 두고 찾으려 애썼지만 만족할만한 관계는 희귀했다. 그 순간은 찰나와 같이 짧거나 일부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관계는 없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나 보다.


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고 추구했나 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 관계의 모습도 변하고 오고 간다. 어릴 적 친구들이 낯설다. 그들의 변화에 실망하곤 한다. 나도 변했을 텐데. 그러면서 속상해하고 뒤로 물러난다.


책 한 권에서 찾은 인상 깊은 내용을 쓰다 보니 현재 관심분야와 고민에 대한 답을 주는 내용이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사람은 또 다른 부분에 줄을 칠 것이다.


지금 내 관심은 예술적인 부분이다 보니 그런 가르침의 내용이 크게 와닿았다.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며 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부분도 내 눈에 띈 것 같다.


같은 책, 같은 영화, 같은 드라마를 봐도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 어떤 고민의 해답을 찾고 있는지에 따라 서로 보지 못한 부분들을 보는 것 같다.


최근 핫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도 친구들의 감상이 다 달랐다. 엄마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친구는 그런 헌신적이고 사랑에 넘치는 부모가 나오는 드라마가 보기 고통스러워서 중간에 껐다고 하고, 얼마 전 아이가 아파서 힘들었던 친구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던 애순이 금명의 서울대 입학식에서 ‘다시는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올 줄 몰랐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배는 애순의 일생에서 엄마의 사랑을 다시금 발견하고 애순의 시를 들려드렸다고 했다.


같은 드라마를 보고도 거기서 느끼는 감동의 빛깔은 다 달랐다. 난 금명이가 나와 같은 87학번이라 그 시절 분위기를 보는 게 좋았을 뿐 관식과 애순이 같은 부모는 유니콘이지 하는 약간은 시니컬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책 이야기를 쓴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책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발견하는 것도 재밌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을 소개받아 나중에 읽어본 후 작가와는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것도 재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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