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면 내 관심사와 삶의 지향점이 보이는 거 같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아이들의 바깥생활이 궁금해 만들었는데 정작 아이들은 비계정으로 해놓고 내 팔로우를 받아주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지도 잊고 지내다 그림을 그리면서 브런치에 글을 모으듯 어딘가에 그림도 모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활성화시켰다.
팔로우는 대부분 친구나 지인들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나의 그림이 주르륵 뜨는 첫 화면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대단한 그림도 아니지만 그렇게 결과물을 모으고 기록할 때 나의 성장과정이 보이는 거 같아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니 추천 화면들이 뜨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알게 됐다. 위인전에 나오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만 보다 일반인이나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작품을 보니 놀라웠다.
알고리즘이 정말 똑똑한 게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새로운 그림들을 계속 띄워준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들의 그림을 보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자주 띄워주는 또다른 분야는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나쁜 음식들을 자주 먹지만 나의 이상향은 건강하게 마른 할머니다. 깡말랐지만 병약해 보이지 않고 건강하게 날씬한 활력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게 내 목표다. 지금의 출렁이는 뱃살과 호빵 같은 얼굴을 보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활기차게 인생 후반기를 보내는 안정되고 지혜로운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현실에선 좋은 음식만 먹지는 못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많이 팔로우하고 있다. 쉽고 간단하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피드를 자주 본다. 자주 보다 보면 그런 음식을 해 먹는 횟수가 늘어나고 아이디어가 많아져 집에 있는 재료로 뚝딱 건강하고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쉬워진다.
오늘은 정말 힘들고 귀찮은데 그냥 배달해 먹을까 하다가도 그런 사람들의 피드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 일이 많다. 치킨이 먹고 싶을 때 비슷한 맛이 나지만 건강하게 만든 닭다리 살 구이 레시피를 보고 빨리 만들어 식욕을 잠재운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도 비슷하게 만들어서 난 삶은 계란과 양배추, 100% 생선살 어묵만 먹는다. 그렇게 무작정 삶은 야채만 먹는다든가 퍽퍽한 닭가슴 살만 먹는 극단적인 식단이 아닌 건강하고 맛있게 먹는 방법들을 배우고 있다.
얼마 전에도 어떤 힙한 외국 중년 여성이 뚝딱뚝딱 K-바비큐를 곁들인 건강한 한 접시를 만들어 먹는 영상이 떴다. 재밌어서 여러 편 보다 이름을 보니 세상에 기네스 펠트로였다! 예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알아보지 못할 만큼 늙었지만 내가 지향하는 깡말랐지만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젊을 때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단한 배우도 자신의 음식을 소박하고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다.
내 꿈이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거다. 하긴 그 누가 그러고 싶지 않을까? 시골의 부지런한 할머니들처럼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는 노동을 하고 자신이 먹을 음식정도는 할 수 있는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게 나의 작은 목표다. 아니 큰 꿈인가?
그렇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보인다. 내 취향과 나의 목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너무 훌륭하고 좋은 피드들이 많아 자꾸 사용 시간이 늘어나는 게 문제지 다른 문제는 없다.
직접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기 전에는 나쁜 점에 대해서만 들었다. 정제된 모습과 과장된 모습만을 보고 사람들이 비교의 늪에 빠져 피폐해진다,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정제된 모습만을 보이는 공허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난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한 외모나 부를 과시하는 사람들이나 물건을 팔려는 장사꾼들만 득실 거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내 계정에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뜨지 않는다. 화려한 외모의 할머니들이 가끔 뜨긴 한다. ‘내 나이 62센데 그렇게 보이나요?’ 하며 3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좋은 몸매의 팽팽한 얼굴의 노인이다. 성형의 힘인지 필터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운 사람들도 과연 많았다.
이제 나이를 먹어선지 그런 사람들에게 자극받아 당장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달려갈 만큼 판단력이 없진 않다. 이제는 그런 일들의 공허함을 알고 나의 노화를 받아들이는데 더 관심을 쓰고 싶다. 늙고 주름진 얼굴에 익숙해지려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그런 일은 더 이상 내 관심사는 아니다.
그런 마음이라 어쩌다 그런 계정이 떠도 자세히 보지 않고 넘기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내 관심분야만 남는다. 아름다운 정원과 빈티지한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계정들, 멋진 사진을 찍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과 오래된 집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들의 계정이 날 즐겁게 해주고 있다. 또 고양이와 강아지 내가 팔로우하는 ‘Buri’라는 너구리를 키우는 사람의 계정이 내 하루치 미소의 총량을 채워준다
이렇게 모든 것엔 양면이 있다. 그리고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거같다.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무분별하게 쓴다면 온갖 안 좋은 것들이 연달아 뜨면서 어느새 나쁜 것에만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삶에서 추구하는 바가 확실하고 목표가 있다면 이런 것에 휘둘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뭐든지 떠도는 남들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경험해 보고 나만의 가치관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걸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면서 깨달았다.
언젠가 친구들과 남산에 있는 트웰브라는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뒷 테이블에 젊은 여자애들이 음식 몇 개를 주문해 놓고 먹지도 않고 몇 시간 동안 이리 저리 사진만 찍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올리려는 거 같았다. 친구들은 그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다고 했고 사실 옆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난 나쁘게만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계정에 올릴 최고의 사진이나 영상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허황된 모습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SNS의 폐해의 전형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나 이런데 다녀왔다’, ‘나 이런 사람이다.’, ‘나 이런 것도 갖고 있다.’라는 과시욕만을 보여주는 아이들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자신의 계정을 최고로 만들기 위한 단 몇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렇게 몇 시간을 노력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난 그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림외에 내가 만든 건강식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별거 아닌 음식과 만드는 과정을 찍어 올리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었다. 남의 눈에 띄게 잘 찍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힘든 일이었다.
‘인스타그램’이라고 하면 그저 과시용이라는 편견에 갇혀서 그런 모습을 나쁘게만 볼 수도 있지만 인스타그램을 직접 사용해 보니 다른 면도 보였다.
모든지 직접 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이런 생각을 친구와 후배에게 이야기해 그들도 소소하게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 친구도 하고 싶긴 한데 올릴 것이 없다고 했다. 잘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집을 예쁘게 꾸미고 정리도 잘한다. 그래서 그런 것을 올려보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한 후배는 사진을 아주 잘 찍는다. 그래서 누가 보든 말든 그 멋진 사진들을 올려보라고 했더니 같이 여행을 다녀온 후 가끔이지만 사진을 올리고 있다.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공간이 생긴 느낌이다. 내 작은 꿈의 집을 지어나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게 블로그든 브런치든, 인스타그램이등 잘만 활용하면 내 세상을 지어나갈 공간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주어지는 셈이다.
내가 평상시 주변에 막 소개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이렇게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나서 나만의 대나무 숲이 생긴 거 같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렇게 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일들을 맘껏 하면 마음이 충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