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고 싶은 것

by 박수종

상업 광고 디자인도 디자이너의 창작품이자 예술적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림을 그리면서 새롭게 깨달았다. 그림 그릴 사진을 고르다 보면 상품과 가장 잘 어우러지는 색감의 광고가 살짝 얹어진 풍경이나 상점, 집이 이상하게 눈에 띄고 그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코카콜라 광고로 둘러싸인 자판기, 며칠 전 그린 나이키 신발 박스 안의 고양이, 코카콜라와 칠성사이다 상자가 높게 쌓여있던 베트남 음식점, 스타벅스 경주 대릉원점, 바샤 커피잔, 비비안 웨스트우드 카페, 서울우유 대리점, 웬디스 햄버거 가게, 폴로 매장, 코닥 카메라, 맥주병들, 다운타우너 햄버거 포장 등등 그 브랜드만의 독특한 색감과 디자인이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특정 상표의 디자인과 색의 조합, 주변과의 어우러짐이 그렇게 예뻐 보인다. 세련된 느낌이 들고 그 친숙함이 내 마음을 끈다.


세계적인 상품을 대변하는 상표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광고 디자이너도 예술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경쟁 작들 중에서 채택되어 긴 세월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유지되어 온 것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와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을만큼 맘에 들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동경하거나 좋아해서 애용했던 상품들이다. 나이키는 교복 자율화 때부터 많은 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어 몸살을 앓다 겨우 얻어 냈을 때의 기쁨과 그때 산 운동화의 색과 느낌까지 기억이 난다.


대학생 때에는 폴로가 유행이었는데 비싸서 짝퉁을 입다 어느 날 진짜 티셔츠를 사 입었을 때의 기쁨도 기억난다. 아이들 어렸을 때 폴로 키즈가 세일이라도 하는 날에는 백화점에 달려가 내가 입고 싶었던 옷을 대리만족이라도 하려는 듯 한아름 사들고 오곤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예쁜 커피 잔이나 머그컵에도 관심이 많은데 유난히 눈에 띄는 새로운 커피나 잔이 나오면 유심히 보곤한다. 최근에도 인스타 그램에서 홍콩의 비비안웨스트우드 카페를 발견하고 한눈에 반해 검색해 보고 그려보기까지 했다. 홍콩과 상하이에만 있는 거 같아 당장 가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체크가 새겨진 커피 잔을 그리며 진짜 명품을 소유하진 못해도 그림으로라도 갖게 되어 기뻤다.


바샤 카페가 청담동에 오픈했을 때 지나가다 보기는 했지만 커피 한 잔에 2만원 가까운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카페는 어떻게 생겼을까 커피 맛은 어떨까 호기심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롯데백화점 본점을 돌아다니다 오픈 형으로 운영 중인 카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판매용 커피와 여러 물건들 구경도 하고 커피 잔과 카페 사진만 찍고 나와서 나중에 그렸다.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림으로 그리니 그 비싼 카페를 충분히 즐긴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대학교 때 학교 앞에 있던 웬디스 햄버거를 좋아해서 자주 다녔는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 사라져서 아쉬웠다. 그런데 딸이 뉴욕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다 웬디스 햄버거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추억이 깃든 그 햄버거집 사진도 그림으로 남겨서 너무 좋았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포함된 장면을 포착해서 그림으로 그려 소장할 수 있게 돼서 좋다. 명품을 소장한다고 해도 이렇게 충만감이 들지 않을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들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걸 며칠 전 서울 시립 북서울 미술관에서 현대 작가들 중 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 불현듯 깨달았다. 그 작가는 여러 음료 캔들을 수집해서 그것들로 여러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자판기에 음료캔들과 캔을 도자기로 만들 것들을 조합해 멋진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나도 이런 상업적 디자인이 포함된 장면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상업적 디자인도 여러 사람들의 눈을 멈추게 만드는 멋진 예술 작품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내 그림들을 찾아보니 정말 많은 그림들에 그런 상업적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을 찍을 때도 쨍한 색의 로고나 광고가 포함된 것들이 예뻐 보였다.


5월에 10일간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에도 처음엔 웅장하고 아름다운 유럽식 건물들에 감탄하며 시진을 찍었는데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다 비슷비슷한 건물들에 감흥을 잃어갈 무렵 유럽식 건물에서 운영 중인 맥도널드, KFC, 아름답고 커다란 나무 앞의 코카콜라 표지등이 예뻐 보여 사진을 찍어뒀다.


나의 오래전 기억과 느낌, 감정들이 만들어 낸 나의 취향들을 그림을 그리면서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거 같다. 내가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그냥 누구나 다 예쁘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눈에 그냥 예쁜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을 잡아끌고 이상한 일렁임을 일으키는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잘 따라가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나만이 느낄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