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by 박수종

그림을 몇 개월째 그리면서 어느 날은 그래도 많이 늘었구나 생각되는 반면 ‘역시 재능이 있어야 되나 보다. 어쩌면 이렇게 못 그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많다. 그 마음에 져서 원래의 무기력한 나로 돌아갈까 두려워진다.


둘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나처럼 불안정한 선을 그리고 수없이 지우길 반복하지 않고 거침없는 선으로 깔끔한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저학년때 그린 그림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세밀한 그림을 어렵지 않게 그려내곤 했다. 고등학교 때 상담을 가면 쉬는 시간마다 칠판 한가득 멋진 그림을 그려놓는다고 담임 선생님이 칭찬하셨다. 미술 선생님이라 그림 그리는 걸 좋게 봐주셨다. 교과서나 노트에도 그림과 낙서가 늘 가득할 만큼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수능을 마친 후 스마트폰을 갖고부터 그림 그리기가 딱 멈췄다. 뒤늦게 스무 살이 돼서 접한 인터넷 세상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하더니 어느 날 “어린아이한테는 정말 스마트폰 사주면 안 되겠어. 나도 나중에 아이 낳으면 스무 살에나 사줘야겠어”라며 웃는다. 그렇게 잘 알면서도 지금도 시간만 나면 핸드폰 하며 누워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넌 정말 재능도 있는데 심심할 때 핸드폰 그만하고 옛날처럼 그림을 그려” “내가 너 정도 재능이면 난 정말 신나서 하겠다” 고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까지 내가 그림을 못 그리게 막은 그 이유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엔 정말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어차피 그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할 텐데 해서 뭐 하냐는 거다. 사실 아이 주변엔 미술적 재능이 대단한 친구들이 유난히 많았다. 아이에게도 재능과 관심이 있었기에 그런 친구들과 친해진 것이리라.


그렇게 비교의 늪에 빠지면 자신이 갖고 있는 보석의 빛을 보지 못한다. 태양 같은 압도하는 빛에 눈이 멀어 발견하지 못한다.


브런치에 글을 모으듯 그림을 모은다는 의미로 요즘 인스타 그램에 그림을 올리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여러 나라의 대단한 작품들이 매일 뜬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아이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 즐겁자고 하는 일이지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들의 멋진 작품세계를 볼 때면 나의 바닥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이런 시시한 그림은 취미로도 그릴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라는 못된 생각이 자꾸 든다. 이번에 그림을 그리면서 유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려도 그려도 선이 삐뚤어지고 비율이 안 맞고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이런 실력으로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게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주입된 사회의 편견과 시선이 뿌리 깊이 박혀있어 아주 조그마한 실패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순식간에 바닥으로 수직낙하 한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게임이나 다른 것에 깊이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부가 아이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가 된 학교에서 그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어느 날 마음먹고 한 번 해보려고 해도 빠르게 늘지 않는 실력과 주변의 닦달에 쉽게 절망에 빠진다.


비싼 과외나 학원을 보낸 부모는 왜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고 잔소리하고 아이의 마음도 조급해지며 그냥 ‘나는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라고 공부와 점점 멀어진다. 학교나 집에서 늘 혼나기만 하고 위축된다. 그러다 게임이나 사이버 세계에서 인정받게 되면 그렇게라도 빈약해진 자아상을 유지할 수 있기에 중독에 빠지는 거 같다.


그림을 잘 그려도 미대에 갈 정도의 실력이 아니면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 숙제나 하라는 소리, 그렇게 해봤자 돈도 벌 수 없으니 그냥 하던 거나 잘하라는 소리, 그런 소리들을 아주 어릴 때부터 들었기에 이런 취미 생활 하나 유지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실이 이 나이까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을 막아섰다. 재능과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다. 일상에서 취미로라도 창조력을 발휘하는 대신 미디어 세상에 영혼을 팔고 있다.


정말 대단한 결심과 재능이 아니면 예술적 일을 하는 걸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나처럼 50대 중반이 돼서 시간이 많아지고 현직에서 물러나서야 용납된다. 한창 직업을 찾아야 하거나 일에 매진해야 하는 인생 초반에 취미에 많은 시간을 쓰는 걸 주변에서 곱게 보지 않는다. 예술은 그냥 취미로 하라고 얘기하지만 시간을 많이 쓰면 아마 그 시간에 스펙 하나라도 더 만들라고 하겠지. 그 시간에 에너지를 앗아가는 인터넷과 미디어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서 나처럼 미천한 재능의 사람이 그림 그리고 글을 쓰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고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사회나 부모님이 요구하는 안정되고 바람직한 일들을 하느라 한 세월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열정이 컸다. 내가 해낼 수는 없었지만 늘 관심이 있었고 예술가들을 동경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있는 것이 나를 위로하고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직접 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용기를 갖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사회적 편견과 시선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것은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 책이었다. 그런 용기와 올바른 생각을 전해주는 책을 계속 읽었다. 평범한 사람이 그런 사회적 압력과 편견,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시시각각 느끼는 자괴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시작한들 쉽게 중단되고 그 무의미함을 견디기 어렵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런 자괴감과 수치심에 그림과 글을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못했을 거다. 나 자신에게 좋은 말과 의미 있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붓고 힘을 낸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끊임없이 찾아 읽는다.


원래 사람들은 남에게 큰 관심이 없으니 그냥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도 된다고, 세상엔 대단한 사람도 많지만 그냥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작은 행복을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삶이라고 계속 속삭인다. 매일 밤 그런 용기와 힘을 주는 책을 찾아 읽고 필사를 하며 계속해서 옳은 생각을 선택하도록 독려한다.


나 자신을 이렇게 다독이며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비교와 실망의 감정들을 잘 들여다보면 내가 다 포기하고 안 그런 척했지만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인정받고 성과도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인정받고 전시회도 하고 책도 출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결과물도 내지 못하면서 계속 글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서 이 나이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았는데 또 그 장애물 앞에 자주 선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러지 말자고, 대단치 못해도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거면 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유난히 그림이 안 그려지거나 내 글이 나만큼이나 옹졸하게 느껴질 때 그런 마음이 된다.


부디 그 마음에 져서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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