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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Apr 14. 2023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고

- 나에게도 아름다운 할머니가 있었다.

책이 작고 소박하다. 표지에는 할머니 방에 있던 작은 텔레비전과 요강, 사과접시가 그려져 있다. 책에도 할머니의 따스함이 배어있는 듯해서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한 사람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사랑 이 작은 책의 물성에서도 느껴지는 거 같다.


이 책을 쓴 작가의 할머니는 모든 교육책을 다 갖다 버려도 될 만큼 단순하지만 세심하게 아이의 마음을 키워준 분이었다. 나에게도 태어나서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같이 살았던 할머니가 계셨다. 지금도 힘든 결정을 해야 할 때나 마음이 힘들 때 꿈에 나타나 환한 웃음을 보여주시면 마음이 편해지고 일이 잘 해결된다. 학예회에서 해야 할 발표 때문에 잠 못 이뤘을 때, 학력고사 보기 전 날, 결혼식 때, 집을 살 때 늘 할머니가 꿈에서 한가득 웃음 띈 얼굴을 보여주셨다.


어릴 때 할머니와 먼 친척 할머님 댁, 고모네 집, 작은 아버지 집에 늘 같이 다녔다. 군포할머니라고 불리던 할머니 댁, 할머니의 조카댁, 어디든 날 데리고 다니셨다. 군포 할머니 집은 지금 가끔 서울의 옛 골목길을 다니다보며 저렇게 낮아서 사람이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낮게 지어진 집이었다. 또 어떤 친척인지는 모르지만 그 집 대학생 언니에게 과외를 받으러 매주 데리고 다니셨다.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은데 서울대 다닌다는 그 언니에게 국어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잊어버리다와 잃어버리다의 차이를 배우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렇게 잘 다녔는데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하는 시간에 갑자기 수업을 하게 되었는지 심통을 부리고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그 만화를 못 봐서 안달이 나고 화가 났다. 그렇게 심통을 부렸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그냥 집에 데리고 오셨다.


이 책의 저자처럼 엄마에게는 감히 부리지 못한 짜증과 심술을 할머니에게는 부릴 수 있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짜증과 심술을 부릴 때마다 할머니는 별말씀 없이 맛있는 간식을 주시던가 내가 스스로 화가 풀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셨던 거 같다. 지금 내 기억 속에는 할머니의 말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늘 온화하게 웃는 모습뿐이다.


이 책 속의 할머니는 그 많은 육아서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던 내용을 ‘몰러~’, ‘저런~’, ‘장혀~’라는 짧은 단어로 보여주신다. ‘몰러~’는 “아이의 정신적 확장에 장단을 맞춰 몸을 낮추는 할머니의 능숙하고 정직한 한마디”였다고 한다. “모른다고 말하는 상대방은 나에게 상처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곤란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것을 실행에 옮기라고 강요하는 확고에 찬 목소리들이 나를 더 난감하게 만들었다.” 어설픈 지식과 나도 확신하지 못하는 짧은 경험으로 아이들에게 얼마나 아는 척을 하고 내 말을 따르라고 강요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실 모르는 게 많았는데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 했다. 때로는 아는 것도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 위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교육법인지 할머니는 저절로 아셨던듯했다.


‘저런~’이라는 말은 우리가 아이에게 공감해야 한다고 배워서 ‘~했구나, 그랬구나’라는 말을 쓰면서도 엄마도 어색하고 아이도 질색하게 만드는 말의 좋은 대체어로 느껴졌다. “ ‘저런~’하고 우는 아이 앞에서 말하고 버틴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거야. 그게 버티는 거였어. 보통 아이가 속상해서 울면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괜찮아’라고 말하는데 사실 아이는 괜찮지 않거든, ‘저런~’이라는 말속에는 정확한 공감이 숨어 있는 거야”라고 저자의 심리상담가 친구가 알려준다.

 우리 할머니가 나를 달래려 하거나 왜 화가 났는지 묻지 않으시고 스스로 화를 삭일 때까지 기다려주신 것도 이 책 속의 할머니처럼 ‘저런~’이라는 한마디를 하고 버티신 것도 모두 같은 따뜻한 공감의 언어였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장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 아니었을까?

“지금은 할머니의 그 허술한 ‘장혀’가 바로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이 장하다는 소중한 인정이었다. 부모님이 보기엔 겨우 빈둥거리고 신경질 부리면서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만 할머니가 보기엔 해야 할 많은 일들과 뜻대로 되지 않는 나 자신 사이에서 부대끼며 보낸 힘든 시간이었다. 나 자신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울퉁불퉁한 시간을 보낸 뒤에 할머니가 ‘장하다’고 하시면 까칠했던 마음의 결이 나도 모르게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우리는 평생 이런 무조건적인 인정에 목말라한다. 뭘 성취하고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치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도 가혹하게 몰아 부칠 때 가만히 인정해 주는 따뜻한 한마디를 듣고 싶을 때가 다.


저자는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편안함’을 이야기한다.

“좋은 부모가 이아에게 주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차원 높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여러 가지 두려움을 떨치게 해주는 것, 부담 없는 편안함 – 부담 없는 편안함은 아이가 받은 것들을 가지고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면적 자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런 할머니가 있었음에 가슴깊이 감사하며 행복했다. 지금도 가끔 할머니가 나의 수호천사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는데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는 그런 할머니와 같이 살 수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저자는 엄마가 반은 할머니, 반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늘 아이들 키우면서 할머니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집이 편안하고 쉴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다. 집이 좀 더러워져도 마음껏 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늦잠을 자고 게을러도 집에서만은 온전히 편안하게 쉴 수 있길 바란다. 집에서조차 편하게 머물지 못하고 불안하다면 아이들은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할머니-엄마'가 되어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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