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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r 17. 2023

피아노를 좋아하는데 왜 핸드폰을 더 많이 볼까요?

- <도파민네이션>을 읽고

피아노 치는 일이 참 좋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산책을 못해서 몸이 무겁고 찌뿌둥할 때 피아노를 한 시간 정도 치면 운동한 거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몸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진짜 신기한 일이다. 손가락만 움직이는데 왜 몸이 가벼워지는지 모르겠다. 내 기분 탓일까?


국민학교 시절 체르니 30번 중후반 정도까지밖에 배우지 않아서 잘 치지 못한다. 소나티네나 쉬운 악보로 좋아하는 곡들을 찾아 치는 정도다. 소나티네에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곡들이 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았던 나는 꽤 오래 연습했음에도 능숙하게 치지 못한다. 그래도 내 실력에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곡을 친다는 기쁨이 크다. 서투르지만 그 곡조들 속에 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잘 치게 돼서 더 많은 곡들을 만나고 싶다.


이런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미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아이들이 표피적인 쾌락에서만 위안을 얻는 것이 안타깝다. 영혼이 만나는 것 같은 기쁨,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일들. 이 세상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고 그 모든 것을 즐기기에도 인생이 짧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책들, 음악들, 가보지 못한 장소들. 이제부터라도 그런 것들을 즐기고 생각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감각적인 도파민을 분출하는 일들에 자꾸 얽매인다. 넷플릭스를 켜면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다. 스마트폰도 그렇다. 일요일 오전에 한 주 사용시간 알람이 와서 보면 놀라곤 한다. 그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는데 후회해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최근에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을 읽었다. 애나 렘키라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다. 이 책에는 현대인들이 도파민에 중독되는 여러 사례들을 보여준다.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현대인이라면 도파민 중독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내가 피아노 치는 잔잔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많은 시간을 핸드폰과 넷플릭스, 쇼핑, 알코올 등에 의존하는 것처럼.


“요즘은 사방에서 도파민이 넘쳐난다.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여져 있다. 사고 싶으면 그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하니 놓여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궁금한 게 나오면 바로 검색을 한다. 그러다 보면 또 길을 잃고 연예인 기사를 읽거나 쇼핑몰에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아무도 우리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손가락질할 준비가 되어 있다. SNS는 부당한 구분 짓기를 너무 많이 일으켜 우리의 자기 비하 경향을 부추긴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반 친구, 이웃, 직장 동료와 비교하는 게 아니라 세상 전체와 비교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성공하려면 스티븐 잡스 정도로는 해야 하고 외모도 연예인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린다. 항상 최고의 것과 비교하며 작아진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수치심과 결핍감, 친밀감의 부족, 과도한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를 도파민 중독에 이르게 하는 원인으로 이야기한다. 수치심을 없애고 친밀감을 길러주는 방법으로 상호 간의 솔직함을 제안한다. “친밀감의 폭발은 우리 뇌의 내인성 도파민 분비를 자극한다. 하지만 값싼 쾌락을 급증하는 도파민과 달리 진실한 친밀감을 통해 급증하는 도파민은 적응성이 뛰어나고 활기를 되찾아 주며 건강을 증진한다.”


또 한 가지 중독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세상에 몰입하기를 제안한다.

마약에 중독됐던 환자가 사진 찍기에 몰입하면서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초점이 또렷한 괜찮은 사진을 찍으려면 완벽히 정적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저를 말 그대로 꼼짝 못 하게 하고 집중시켰어요. 제가 마약과 함께 도망쳐 간 세상에 필적할 만한, 이상하고 초현실적이며 강렬한 세상을 카메라 끝에서 발견했죠. 하지만 마약이 필요 없으니 이게 더 나았어요.” “세상에서 도망가서 망각의 길을 찾는 대신 세상에 몰입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수치심, 불안과 소외감을 감추기 위해서 도파민 중독에 빠진다. 그것은 게임, 마약, 알코올, 쇼핑 등 현대인들이 한두 가지 이상 이미 중독된 것들이다. 어린 나이부터 이러한 중독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다.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고 유모차를 타고 산책하는 아이 앞에도 스마트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아이는 중학교 때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나와 많은 갈등을 겪었다. 너무 많은 시간동안 핸드폰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핸드폰 하느라 새벽까지 깨어있고 학교에서는 졸기만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중3 때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액정이 다 깨졌다. 아이에게 고칠 건지 이 기회에 투지폰을 할지 선택하게 했다. 아이도 투지폰을 선택했다.


둘째 아이는 누나와의 이런 실랑이를 봐선지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 때까지 투지폰을 썼고 필요할 때는 내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사용했다. 카톡방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친구들과 잘 지냈다. 학교에서 전달할 소식이 있을 때는 친구나 선생님이 문자로 따로 연락해 주셔서 아무 문제 없이 중고등학교를 지냈다.


핸드폰이 없으니 게임도 거의 하지 않았고 시간이 많으니 초, 중학교 때 도서관에 있는 1318 청소년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다. 판타지 소설과 좋은 고전들도 많이 읽었다. 그때의 독서가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 거 같다고 이야기한다.


수능이 끝난 다음날 본인이 원하는 최신폰을 사주었고 그날부터 2년 넘게 핸드폰 중독자로 살고 있다. 얼마 전 “어린애들은 절대로 스마트폰 사주면 안 될 것 같아. 나도 그만하고 싶은데 그만둘 수가 없어. 완전 중독자 됐어.”라고 실토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절제가 안 되는데 어린애들은 정말 안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기쁨이 오래가고 나를 성장시키는 행복한 일들이 많은데 아이들이 핸드폰에만 매달리는 게 너무 안타깝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가 제안하는 중독을 극복하는 일들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들이다. 친밀감의 회복, 세상에 몰입하는 일. 즉, 인류가 평생해온 본능과도 같은 창조적인 일들, 음악을 만들거나 춤추는 일, 그림 그리기, 글쓰기 같은 일들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의 즐거움을 어릴 때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이른 나이에 중독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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