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에게 그냥 어떻게 하라고 시켜줬으면 할 때가 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장래희망 조사에 꼭 하나씩은 적어갈 수 있는 우리만의 소중한 보물이 저마다 있는 셈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내 성적에 갈 수 있는 대학, 학과에 나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꿈을 제쳐두게 된다.
나는 그런 경험만큼은 안하고 싶었기에 고등학교 3학년 때 많은 노력을 들여 목표하던 곳으로 겨우 도착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문과의 취업난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문과 안에서도 비상경문과(상경계열을 제외한 인문계 전공들)는 정말 취업 문턱이 어려우며 학문과 진로를 연결시키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니 막막해지고 퍼즐 맞추듯이 나의 스토리를 만든다. 그 스토리는 이제는 면접에서 잘 사용하고 있다. 어문계열 출신인데 왜 이런 직무를, 이 회사를 지원하냐는 이야기에 나는 준비된 답변을 술술 읊는다.
실제 통계청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쉬었음'이 있다. 노동 시장에서 활동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활동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특히 2025년은 유난히 꽁꽁 얼어붙은 취업난에 쉬었음 청년이 많이 늘어난 듯 보인다. 그런데 단순 말처럼 휴식을 취했다면 마음이 편해야 할텐데 이들은 왜 이리 불안하고 우울할까? 아무것도 못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기분은 세상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잘못된 사람인 것마냥, 내가 이상한 것마냥.
나 또한 2년의 고시 준비를 하고 또 올해의 첫 취업 준비를 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스스로 돈을 벌어 독립해야 할 나이가 된 듯한데, 부모님은 내 나이 때 한참 어른인 것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사셨을텐데 나는 아직도 용돈을 받으며 살고 있다. 또한 뭐든 잘하는 AI의 등장으로 오롯이 나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무언가, 내 안에 있던 '꿈' 이라고 불리던 뭔가가 있었던 건 확실한데 찾을 수가 없어졌다.
취업은 노력도 운도 인연도 따르는 복합적인 요소들의 결과물이다. 애쓰며 각자의 방식대로 삶에 충실하게 살아왔어도 각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상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몇십개의 서류를 쓰고 골고루 놀리는 듯한 탈락 통보를 받다보면, 내가 살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도 부정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교수님들께서는 분명 대학은 취업사관학교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수업에서 학문을 익힐 때 느꼈던 감동은 이제 내 인생에서 불필요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정답지가 없는 이 시험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길어질지 모르는 터널 속을 지난다. 터널의 끝은 어떤 모양일까, 그 모양에 내 몸을 맞춰야 하는데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실패감을 학습하며 하고 싶은 것을 잃어가고 나를 반겨주는 곳이 없나 눈을 돌리게 된다. 그까짓거 시키는 일 하면 되니까 돈이라도 벌게 해주세요. 세상의 이물질이, 가족의 짐이 되는 건 너무 싫으니까요.
물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하게 해줄 순 없다. 모든 일에는 요구되는 능력과 노력이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지만 웬만한 시험에는 정답이 있고 점수가 있어 내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 취업을 준비하면 나를 사랑해달라고 구걸하는 기분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차라리 정답을 알려주지 못할 바엔, 막연하고 가보지 못한 길을 함부로 걷게 되더라도 사랑을 전하는 격려가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시기를 대수롭지 않게 극복하고 자기만의 스토리로 헤쳐나가는 사람은 위인이 되겠지만, 그 누구도 위대하고 싶어서 위인이 되는 건 아니다. 하던 일을 열심히 잘 해내이다보니 어느새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니까.
그러니, 제대로 잘 먹고 본인을 잃지 않으며
사람들이 계속 탈락, 불합격, 실패같은 말을 꺼내더라도
하루를 무사히 시작하고 안전히 끝내는 우리의 지긋지긋히 반복되는 나날들의 성공을 잊지는 말자.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았을 뿐 별은 항상 하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