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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록씨 May 12. 2023

김동률의 <황금가면>, 태양을 바라보는 일

4년만에 돌아온 그의 특별한 신보


김동률의 신곡이 4년만에 발표되었다. 


2019년 오래된 노래 공연에서 '감사' 피날레로 마무리되었던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늘 그가 말했듯이 언제나 바쁜 자신만의 할 일을 하고 있었지 않을까? 그동안 지난 앨범들의 리마스터링 소식도 들려왔었지만, 내심 신곡을 계속 기대하고 있었던 건 나도 그의 팬으로서 그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늘 궁금했던 것 같다. 

그의 음악이 나의 인생에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시점부터 내가 그걸 인지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내 기준 처음 맞이했던 신보는 '동행' 앨범이었다. 한창 전람회 시절 곡들부터 모놀로그 앨범까지를 반복하면서 '와 이런 가수를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는 김동률이 '현역' 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이후 새로운 앨범과 공연들을 몇번 더 겪고 난 후엔 다른 무엇보다도 김동률이 어떤 음악을 하든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노래들엔 본인이 듬뿍 들어가있다. 그의 공연에서 나는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곡들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곡들 중 어느 무엇도 자신이 아닌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 4년만의 신곡 '황금가면'을 처음 듣자마자 놀랐다기보단 당황스러웠다. 분명 내가 아는 김동률인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가져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목인 황금가면부터 어떤 내용을 담은 곡일지 감히 감도 오지 않았는데 노래의 스타일마저도 생경했다. 그나마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밖에' 나 '퍼즐' 정도일까?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빠르고 더 뮤지컬스럽다. 뮤직비디오조차도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김동률이 신곡을 내면 그 해 공연을 한다는 팬들만의 공식이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도 초부터 최근까지 코로나 19로 원할한 공연은 아마 불가능했을테고, 그래서인지 최근 몇년간의 공백은 더욱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여름의 끝자락' 을 몇해의 여름이 지날때마다 듣고 '노래'를 들으며 가을의 속상한 마음을 달랜 것도 몇번인지. 그런데, 인고의 시간이 끝나고 찾아온 그의 신곡은 굉장히 빠르고 생소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어쩌면 나도 마음이 고이고 말았는지 당연히 신곡이 나오면 정통 발라드 한 곡에 스케일이 큰 대곡 한 곡이 담긴 정규앨범이 나올 것이라고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의 김동률이기만 해도 다행이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꽤 심술궂은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발표 2일 전에 신곡 예고를 하고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선택이라니. 하지만 그러고도 '김동률'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늘 세상에 조심히 꺼내고마는 노래들 중 당연히 유명해진 곡들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한 곡들도 있다. 하지만 보물상자를 열어보듯이 조심히 들여다보면 김동률이 굉장히 많은 시도를 하고 또 많은 변화를 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김동률로서 늘 애쓰고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갑자기 그에게 힙합을 시키고 일렉트로닉을 시킬 순 없는 일이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누구보다도 잘한다. 우리 모두를 당황시킨 신곡이지만, 이조차도 김동률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김동률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나는 그가 어떤 꿈과 이야기에 대한 노래를 꺼내도 기립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내가 그의 노래들에게 받은 격려만큼 나도 응원과 감사를 보낼 뿐이다. 


모두가 잊고자 노력했기에 유치한 상상이 되어버린 영웅


대대로 꽃미남 명품 배우만 출연한다는 김동률의 뮤직비디오답게 조우진 배우님이 출연하셨다.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이런 춤사위가 김동률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리라곤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김동률이 말하는 '황금가면'은 파워레인저나 가면라이더같은 전대물의 캐릭터였다. 김동률만의 가공의 캐릭터인 황금가면은 서쪽 하늘에서 날아와 악당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착한 사람들을 구해주고서도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쿨한 히어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영웅이 되는 꿈을 어린 시절 한번쯤은 가진 적이 있다. 내 친구에게 못된 장난을 치는 동네놈들을 물리치고자 우르르 몰려가본 적도, 가족들을 힘들게 만드는 일들을 어린 내가 해결해보고 싶었던 적 또한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나보다 힘이 세고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서는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단 누군가에게 구해지고 싶은 기분으로 살아버렸다. 고무장갑 펀치에 플라스틱 양동이 빗자루 검 무장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한 필살기가 아니라 이제 일상 속 나의 지저분한 흔적을 치우는 도구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이런 '흔한 소시민7'의 배역을 배정받은 나는 별을 바라보는 역할을 바라보는 연기를 하며 살고 있었다. 어릴 적엔 선과 악이 명확해 황금가면이 악당을 물리치는 선역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제보니 그 악당도 사연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 악당이 되며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을 상대로 이긴다던 세상의 정답은 너무도 내리기 어려운 결론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의 의문점들은 내 양심을 쿵쿵 눌러대 날 약하게만 만든다.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하지만 서쪽 하늘 끝, 퇴근길 노을 속 무언가 나를 부르는 소리. '영웅님 눈을 뜨세요' 같은 말도 안되는 상상. 비록 이번 임무의 집결지가 지하철 1호선이더라도, 이번 임무의 목표가 무사퇴근이더라도 저 별빛같은 무언가가 내 심장을 찔러준다면 주저 앉지 않고 어깨를 쫙 필 수 있을 것만 같다. 

슈퍼히어로는 가끔 일반인들 사이에서 모습을 숨기면서 살아간다. 그들도 상사에게 혼나기도 하고 이웃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양복 안에 숨겨둔 슈트와 주머니 속 가면을 꺼내는 순간 모두 그의 이름을 연호한다. 그래, 어쩌면 우리도 황금가면을 어딘가에 몰래 숨겨두었는데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 아닐까? 찾아내자, 그리고 등장하자. 

가끔 슈퍼히어로물의 치트키 같은 흥행보증수표는 악에 물들어버린 슈퍼히어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내용이다. 그래, 누가 정답이 뭔진 몰라도 한번 무찔러보자. 단 하나 확실한 건, 내가 이기면 내가 정의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절대 지지 말자.


태양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어쩌면 태양이 되는 일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지금까지 별과 같은, 태양빛같이 빛나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너무나도 찬란하고 화려한 터널 끝이 빛같이 눈을 찌푸리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빛은 너무나도 멋있지만 나를 위축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쬐어오는 황금가면의 빛은 가끔은 이렇게 보이기도 한다.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그쪽 입장에선 마치 내가 황금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영화 주인공은 너' 라고 알려주듯이 말이다. 멀리 빛나며 날아가는 별을 올려다보는 일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누군가에게 때론 어딘가에선 나도 누군가의 <황금가면> 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태양을 맨눈으로 바라보는 건 눈물이 쏟아질만큼 힘든 일이지만 태양을 마주할 때 우리 모두 빛나는 황금가면을 쓸 수 있게 된다. 마음껏 빛을 뿜어내시길.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짜잔, 이 몸이 등장했다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이제 스스로가 정체를 숨기고 세상을 살아가는 황금가면이란 것을 알게 된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웃어 넘긴다. '그래 내가 좀 멋있지?' 하면서 말이다. 이제 언제든 자신이 필요한 순간에 빛나는 황금가면을 쓴 채 나타나 스스로를 구원하길. 


김동률의 신곡 <황금가면>은 템포도 소재도 지금까지와의 것은 다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세지는 이전의 '노래'나 '청춘' 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황금가면 또한 누가봐도 어엿한 어른인 그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들, 소회, 씁쓸함과 그것을 극복하는 당참을 표현해낸 곡이다. 언젠가 김동률이 공연에서 '나이를 먹는 건 쉽지만 잘 먹는 건 어렵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그의 노래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그에게 20대 때의 감성과 노래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우리가 필요할 때 그 시절 김동률의 노래를 꺼내 들으면 될 뿐이다. 단지 4년만의 이 신곡을 듣고서 나는 '이 사람, 앞으로도 해줄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등장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됐다. 누구나에게 힘든 시기였던 팬데믹을 김동률이라고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간을 같은 사람으로서 겪어내고 이겨낸 그가 준비해온 이야기, <황금가면> 또한 너무나도 감사한 음악이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곡이 일종의 선공개 곡이고 올해 새 앨범과 새로운 공연이 꼭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가 팬데믹 기간동안 어떤 생각을 해왔고 그걸 우리에게 어떻게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그럼, 나도 어딘가에 숨겨둔 황금가면을 찾으러 신발끈을 매면서,


출처 김동률 <황금가면>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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