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사립 유치원 교사였다. 업무 강도에 비해 박봉이라고 소문난 직종이었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넉넉했다. 이십대 중후반의 나는 어디에서든 유치원 교사로 불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조차 살가운 성격, 유쾌한 분위기, 옷 입는 취향, 특유의 말투,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유치원 선생님이라 그렇구나." 한 마디로 정의했으니까.
출산을 하고 워킹맘을 포기하며 퇴사를 선언했을 때 오히려 자유라고 생각했다. 절대 과거를 들키지 않으리라.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도 내심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려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첫 부모상담에서 담임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던진질문은 "어머님, 혹시 기관에서 일을 하셨었나 봐요." 앞으로도 난 멋대로, 마음대로 살기는 단단히 글러먹었던 것이다.
모든 직종에는 편견으로 포장된 이미지가 있다. 과거의 내가 학부모의 신뢰를 받는 상견례 프리패스상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시어머님이 아신다면 크게 비웃으시겠지. 아니, 어쩌면 시어머님조차 그 예쁜 포장에 속아 곱게 키운 아들을 넘겨주신 걸 지도 모른다.
편견은 불쑥 나타나 나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책임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로 변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편견에 꼭 맞아떨어지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느껴야 마땅한 감정은 만족일까, 회의일까? 퇴근 후 쇼미 더 머니를 보면서 맥주 안주를 뒤적거린던 날, 나는 후자에 더 가까운 사람임을 깨달았다. 유치원 교사라고 힙합 음악을 들으며 얼큰하게 한 잔 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유난히 콕콕 박히던 랩 가사가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다.
서른 즈음의 다른 이들은 어떤 편견에 시달리고 있을까. 만족과 회의 사이를 저울질하고 있다면,서른 즈음의 우린 좀 더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완성인 나는 포장하지 않아도 예쁜 사람이고, 타인이 만든 나에 만족하기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