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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제로 8화

에피소드 8: 연애운을 높인다는 팔찌

초능력자 제로


에피소드 8: 연애운을 높인다는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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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훈은 늘 연애에 서툴렀다. 말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지만, 그 말들 사이로 자신의 진심을 잘 꺼내지 못했다. 손끝이 먼저 움츠러들었고, 눈빛은 종종 옆으로 흘렀다. 사람을 향한 감정은 생겼지만, 입밖으로 꺼내는 데는 언제나 계기가 부족했다.


그런 그에게, 제로가 이번엔 팔찌를 건넸다. 실로 만든 수공예 팔찌. 평범한 검정 끈에 빨간 구슬 하나가 박혀 있는 구조였다. 제로는 조용히 말했다.


“이 팔찌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당신의 진심이 닿도록 도와줄 겁니다.”


지훈은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젠 좀 뻔하네요.”


“믿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당신은 움직이게 될 겁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지훈은 팔찌를 손목에 걸었다. 낯설었지만,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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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말, 지훈은 은하의 카페에 갔다. 오랜만의 방문이었고, 그녀는 놀란 듯 반가운 얼굴을 지었다. 둘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대화는 일상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미묘한 감정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근데 그거, 새 팔찌야?”


은하가 물었다. 지훈은 손목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응. 선물 받은 건데, 좀 웃기지?”


“아니, 예뻐. 잘 어울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따뜻했다. 팔찌 덕분일까, 아니면 대화 속 그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던 걸까. 지훈은 어색하지 않게 웃었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둘은 조금 더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은하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단단했으며, 지훈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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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회사 근처에서 지훈은 우연히 다른 여성과 마주쳤다. 마케팅 협력사 직원으로 몇 차례 회의를 함께 했던 사람. 그녀는 먼저 인사를 건넸고, 지훈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의 말투는 경쾌했고, 웃음은 자주 터졌다. 식사 자리를 제안받았고,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서 지훈은 유난히 자신감 있게 말했고, 상대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화가 끝날 즈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훈 씨, 오늘 좀 달라 보였어요. 예전보다 밝은 느낌?”


그 말은 귓가를 간질였고, 지훈은 팔찌를 스쳤다. 어쩌면 이게 ‘연애운’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그날 밤, 그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지금,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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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그는 은하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은하는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좀 바빠. 미안.”


그 말은 단순한 일정의 문제 같지 않았다. 뭔가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는 느낌. 지훈은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했다.


‘내가 뭔가 놓쳤나?’


팔찌를 다시 바라봤다. 팔찌는 여전히 손목에 걸려 있었지만, 따뜻했던 감정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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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은하와 다시 만난 자리에서 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뭔가 서운했던 거 있어?”


은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있었지. 네가 최근에 바뀐 거 알아. 말도 잘하고, 밝아지고. 근데,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같아서.”


지훈은 말문이 막혔다. 은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랑 있을 때의 너와, 다른 사람 앞의 너. 그게 달라 보이면... 누구라도 혼란스러울걸?”


그 말은 날카로웠지만, 정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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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팔찌를 벗었다. 책상 서랍 안에 조용히 넣으며 중얼거렸다.


“사랑을 끌어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거였구나.”


그는 다시 팔찌를 꺼냈다. 이번엔 손목에 걸지 않고, 손바닥에 쥔 채 가만히 바라봤다. 빨간 구슬 하나가 반짝였다.


‘이건 누군가를 향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향한 물음이었을지도.’


그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엔, 팔찌가 아니라 자신의 말로 마음을 전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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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9화 면접에 합격하게 만드는 펜


이번엔 ‘면접에 합격하게 만들어주는 펜’이다.

지훈은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제로에게 받은 펜을 손에 쥔다.

말은 술술 나왔고,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펜이 해낸 걸까, 아니면 그동안 쌓아온 준비와 용기가 빛을 발한 걸까?


“면접에 합격하게 만들어준다는 펜... 진짜 실력은 펜에 있는 걸까, 아니면 그걸 쥐고 준비한 시간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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