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모린 May 23. 2019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_광야의 남자는 진짜였다.

브런치 무비 패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보고

  

  광야의 남자는 위풍당당했다. 죽어가는 기사도를 말하며 남자는 맹렬히 앞으로 나아갔다. 풍차를 악마라 지칭하며 뛰어드는 남자. 돈키호테, 익숙한 이름을 되새길 때쯤 영화는 이 모든 것이 주인공 토비가 촬영한 광고 영상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영화는 아슬아슬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 든다. 금방이라도 책에서 튀어나올 것 같던 돈키호테의 한 장면은 실은 토비의 광고 촬영 장면이었다던가. 돈키호테라 주장하던 하비에르 앞에 나타난 마법사와 기사들이 실은 하비에르를 되돌리기 위해 모인 마을 사람들이었다던가.


  어느 순간 관객은 토비의 눈으로 정체불명의 환상을 마주했다가 이내 현실로 되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관객은 환상의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산초가 된 토비와 돈키호테가 된 하비에르의 정 반대의 시선 속에서.



  하비에르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는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한 노인이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연기, 그것도 돈키호테 역할을 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역할이 아닌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마을 구석에 틀어박혀 토비의 작품을 틀어놓고 소품으로 입었던 의상들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과거를 쫓아 찾아온 토비를 감독이었던 '토비'가 아닌 '산초'로 알아볼 만큼.


  이렇게 영화는 현실과 환상 아래 두 사람을 산초와 돈키호테로 묶어버린다. 점점 토비가 산초가 되어가는 것처럼 어째서인지 관객은 자신이 돈키호테라고 굳게 믿는 어느 '미쳐버린 노인'에 대한 시선에서 '돈키호테' 그 자체인 광야의 '남자'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앞에 돌시네아가 나타난다.


  하비에르와 마찬가지로 토비의 영화 속 돌시네아였던 그녀, 바로 안젤리카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비에르가 돈키호테의 삶에 자신을 털어 넣은 것처럼 안젤리카는 현실 속에서 '연기자'를 꿈꾼다. 하지만 그녀는 CF 감독으로의 삶에 찌들어버린 토비처럼 연기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어느 러시아 부호의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철저히 꿈이 짓밟힌 채 자신이 지워져 버렸다. 그 순간만큼은 토비 역시 돈키호테처럼 돌진해 그녀를 지금의 현실에서 달아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토비가 자신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토비는 자신이 돈으로 그녀를 사겠다며 홧김에 자신이 주웠던 금화를 내던지지만 좌절해버린 현실처럼 금화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러시아 부호의 집으로 향하며 그들에게는 새로운 현실이 펼쳐진다. 현실이라는 가정 아래 깔린 환상, 가장무도회. 유난히 돈키호테를 좋아했던 부호는 자신을 돈키호테라 믿는 하비에르를 이용해 극을 꾸민다.


 그 순간 하비에르는 진짜 돈키호테가 된다.



  문제는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돈키호테의 한 장면을 연출하며 이들은 하비에르를 철저히 이용한다. 그의 진심은 손님과 부호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토비는 굳은 표정으로
돈키호테를 지켜본다.





  모두의 웃음이 향하던 순간 우리는 토비의 굳은 표정을 본다. 과연 하비에르의 신념을 이용해 웃음을 터트리는 이들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진짜 미쳐버린 사람은 연 하비에르(돈키호테)일까. 아니면 그를 바라보는 바로 우리일까.



  토비는 안젤리카와 함께 부호의 집을 탈출하려 발버둥 치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 어떻게든 안젤리카를 구하려는 그는 돈키호테처럼 질주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주 속에 하비에르가 휘말리고 만다. 그를 돕기 위해 뛰어든 순간 토비가 그를 다른 인물로 오해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하비에르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구두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노인. 광야의 돈키호테는 최후마저도 산초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새로운 돈키호테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젤리카의 위기가 모두 연극이었음을 깨달은 뒤에도 하비에르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현실은 그렇게 흩어졌다. 그토록 산초이기를 거부하던 토비는 자신이 바랐던 안젤리카를  구했음에도 환상에 시달린다. 거대한 거인. 이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돈키호테가 되어야 한다. 하비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광야의 남자는 적을 향해 달렸다.
풍차, 아니 진정한 돈키호테가 되기 위해.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테리 길리엄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