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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Jun 02. 2017

가족의 발견

민.원.상.담.실









저의 아버지는 군인이셨습니다. 

35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고 정년퇴임하실 때까지 늘 얼룩무늬 제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언제 비상이 걸릴지 몰라 일요일이나 연휴에도 가족들을 데리고 남들처럼 멀리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잠드는 시간과 기상 시간이 일정했고, 식사도 끌어넣듯 끝냈습니다. 

가끔 현관에 주저앉아 단단히 군화 끈을 죄고 있는 뒷모습이 그나마 천천히 아버지의 모습을 두 눈에 각인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철없던 그 시절, 문득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아버지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태권도에 병웅이네 가족이 함께 모여 운동을 합니다. 아빠의 일터가 안양이지만 시간 나는 짬짬이 도장에 들러 아이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소싯적 태권왕 출신이라며 내뻗는 발차기가 제법 엣지 있습니다. 몸으로 체득한 기억력에 놀랍니다. 운동 사이사이 농담도 잘하시고 아이들과 장난도 치십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스트레칭을 아이들보다 두 배 더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도 세월의 무게에 따라 조금씩 다른가 봅니다. 하지만 병웅이 아버지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보며 가슴속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듭니다. '당신은 좋은 아버지입니다'라고요.


연말에 지독한 감기로 앓아누웠을 때 서울에서 아버지가 내려오셨습니다. 

한파에 폭설로 죽집을 찾지 못한 아버지의 한 손에는 캔에 든 인스턴트 죽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래도 전복죽이야"라고 웃으며 건네신 그 죽을 천천히 입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오래오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걸 보면 저는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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