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연필과 지우개처럼 붙어 다니던 두 친구가 대판 싸웠습니다. 한파에 처마 끝마다 고드름 맺힌 골목길에서 키 큰 친구가 그보다 작은 친구의 목을 팔로 휘감아 조르고 있었습니다. 조르는 친구나 당하는 친구나 흥분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의 뜀박질이 북극발 한기와 만나 결로현상을 일으키며 얼굴이 땀으로 범벅입니다.
길에서 마주친 두 친구를 갈라놓고 태권도 수업이 있는 키 큰 친구를 데리고 도장에 들어서자 땀인 줄 만 알았던 물기가 눈물이었음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싸운 이유가 궁금하며 계속 물어보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에 꺼이꺼이 울음이 비집고 흘러나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듭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오래된 연인처럼, 두루마리 휴지를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울음이 잦아들고 그 친구는 목구멍에 막혀 있던 말들을 힘겹게 밖으로 밀어냅니다.
걔가 먼저…놀렸어요…우리 엄마 욕도…했어요…걘…친구도…아니에요.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연결된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단이라는 문구 위에서 엄지 손가락이 주저합니다. 그 친구와 관계를 끊으면 그 친구와 연결된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감이 엄지 손가락을 꽉 붙잡고 있습니다.
넌 좋은 아이야. 불안해하지 마.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 너무 뻔하며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떠올려 봅니다.
여기 벽에 1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못을 박는다고 치자. 그런데 이 못은 정말 특이해. 한 개는 1킬로그램 밖에 못 견디지만, 두 개를 박으면 그 보다 몇 십배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두 못 사이의 거리도 중요해. 너무 가깝거나, 멀리 있으면 그 힘이 흩어져 버려서 효과가 없어. 혹시 한 개의 못에 녹이라고 슬었다면 같은 곳에 박힌 못도 곧 녹슬고 말겠지. 적당한 거리, 그 못과 못 사이의 거리가 너의 세계야. 너의 세계를 가져야 해. 넌 1킬로그램을 들 수 있는 아주 튼튼한 못이야. 너무 불안해하지 마. 너의 세계 안에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적당한 거리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는 네 친구들도 너를 든든히 생각할 거야. 그게 쌤이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 관계야. 카카오 뭐시기 보다 더 멋진 관계망!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는 스마트폰의 홈 버튼을 눌러 다시 바탕화면으로 나갑니다. 게임 아이콘들로 도배된 그 친구의 스마튼 폰을 보며 다시 한번 소리칩니다.
사이버 세계 말고, 너의 세계를 만들라고, 너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