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근어치 소리도 못한다면
사람의 틀은 인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시 타고나야 한다. 십 근, 백 근, 천 근, 만 근, 몇 만 근이 모양으로 다 다르다. 십 근 시인이 암만 한대도 백 근 시인은 못 된다. 그러나 십 근 시인도 시인은 시인이다. 저의 근량에 맞은 소리를 맞게 하면 그만이다. 천만 근량을 타고났더라도 십 근어치 소리도 못한다면 그는 영영 시인이 못 된다.
가람 이병기李秉歧 선생이 《문장》 4월호(1940년) ‘시조선후’에서 한 말이다. 글쓰기는 제 나름 뜻 표현하면 된다는 말씀이다. 글을 쓰며 저 말을 절감한다.
의마지재(倚馬之才)’라는 말이 있다. ‘말에 의지해 기다리는 동안 긴 문장을 지어내는 글재주’라는 뜻으로, 글 빨리 잘 짓는 재주 이르는 말이다. 주위 돌아다보면 저 성어에 맞게 글 잘 쓰는 재주 가진 이들 많다. 딱히 부러워할 게 없다. 지어낸 글이 공허한 말들의 수사요, 객쩍은 말들의 성찬이라면 안 쓰는 게 낫다.
또 가람 선생 말처럼 천만 근량을 타고났더라도 십 근어치 소리도 못한다면, 그는 영영 재주를 펴지 못하게 된다. 넋이야 신이야 거침없이 마구 쓰는 글도 문제지만 좋은 글 쓴다 유난떨며 생각만 하다가는 ‘너무 고르다 눈 먼 사위 얻는 꼴’ 된다. 일단 붓 들고 백지 앞에 용감하게 서야 한다.
붓 잡고 백지 앞에 용감하게 섰으면 주제부터 정하자. 사람 사는 세상에서 찾아낸 이야기가 주제다. 참고로 주제가 가벼우면 제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글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