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을 안주 삼아 들고 벼루 샘물을 술 삼아 길어 올리니
2021년, 12월 21일, 한 해를 마무리한다. 세계는 음울한 회색빛이다.
날씨도 이에 못지않게 차갑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런저런 이유가 없지 않겠지만 내 서재 휴휴헌은 북향이라 늘 계절이 이 맘 때면 벌써 내년 봄을 일상처럼 기다린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형암(炯菴) 이덕무(李德懋,1741~1793) 선생의 글을 보다 아래 구절을 만났다.
“창일훤이연빙석(窻日暄而硏氷釋): 창가의 해가 따스해서 벼루의 얼음이 녹는다”
얼마나 추운 방에서 지냈으면 벼루에 얼음이 얼었을까. 그런 찰가난 속에서도 책만 보는 바보라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자호(自號)한 형암 선생이다.
형암 선생은 일찍이 글을 읽을 때 밤이면 추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므로, 『논어(論語)』 1질은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쌓아 놓고 『한서(漢書)』를 나란히 잇대어 이불로 덮으니 친구들이 조롱하기를 “누가 형암을 가난하다 하랴? 『논어』 병풍과 『한서』 이불을 비단 장막과 비취 이불이 당할쏘나.”하였단다.
어찌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문틈을 가린 『논어』가 비단장막이고 이불도 없어 『한서』를 가슴에 놓은 것이 비취이불’이겠는가. 비슷한 처지이기에 그렇게라도 가난을 문자(文字)로나마 챙겨주려는 형암 친구들의 글선심이요, 글적선이렷다.
그러고 보니 문체가 영 마음에 안 든다고 정조에게 꾸지람을 듣고는 평생을 그저 그런 삶으로 생을 마감한 이옥(李鈺, 1760~1815) 선생의 「제문신문(祭文神文)」도 눈에 들어온다.
“내 감회가 많이 생겨 붓꽃을 안주 삼아 들고 벼루샘물을 술 삼아 길어 올리니 마음의 향기 한 글자가 실낱같이 가늘고 희게 타오르는구나. 글을 잡고 신에게 고하니 신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그러고 보니 ‘글 쓰는 이로서 정녕 저러한 삶, 저러한 글벗이 있다면 어찌 아름다운 평생 아니런가.’하는 생각이 든다. '붓꽃을 안주 삼아 들고 벼루샘물을 술 삼아 길어 올린다'니, 부귀도 공명도 없지만 글 읽는 재미는 이런 데서 얻나 보다.
시나브로 마음속 음울함이 사라지고 마음의 향기가 솟으니 글은 참 신령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