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 생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by 휴헌 간호윤

<내 생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2021년 8월 26일, 여름방학이 끝나간다. 생각이 많다.


“생각하면 통하게 된다(思曰睿)”


《서경》<홍범>에 보이는 생각에 대한 정의이다. 생각을 오래 하면 슬기는 저절로 생겨 답을 얻는다는 말이다. ‘생각하고 생각하면 귀신과 통한다’는 말도 있다.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의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근 1년간 책 한 권 내지 못했다. 출판사 찾기가 어려워서다. 엊그제야 비로소 원고를 넘겼다. 50부 인쇄에 인세를 3권 받는 조건으로. 20년 전에 전공서적도 1000권을 찍고 100부 인세를 받았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에게 방학은 오로지 글 쓰는 기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책상에는 분명 앉아있었는데 변변한 글 한 편 없다. 올여름을 잃어버렸다.


서경덕 선생은 벽에 생각거리를 써놓고 3년 고심했으며 조성기 선생은 생각 틔우기를 위해 “뱃속에 하나의 ‘사려과굴’과 하나의 ‘사려로경’을 만들었다(此腔子裏面成一思慮窠窟 開一思慮路逕)”고 했다. 저 선생들에 비해 내 생각이 못 미침을 인정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쓸 거리는 많은데도 방학 동안 무엇을 써야 할지 주제도 잡지 못했다. ‘사려과굴’과 ‘사려로경’ 어디서 막혔는지, '생각거리'를 무엇부터 풀어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다면 문제는 다르다.



『근사록』을 본다. 이러한 처방을 내려준다.


“만약 한 가지 일만을 생각하는 데도 답을 얻지 못하면 잠시 다른 일과 바꾸어서 생각해 보라. 풀지 못하는 일에 오로지 매달려 있지 마라 대개 사람의 지식은 어느 일에 덮여 있으면 비록 억지로 생각해도 통하지 않는다(若於一事上思未得,且別換一事思之. 不可專守著這一事. 蓋人之知識,於這裏蔽著,雖強思亦不通也.)


'이 생각'이 생각하고 생각해도 열리지 않을 때는, 다른 '저 생각'을 해보라는 조언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생각'이나 '저 생각'이나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생각이란 즐거워도 생각하고 슬퍼도 생각하니 내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서서도 생각하고 앉아서도 생각하고 걷거나 누워서도 생각하고, 혹은 잠시 생각하고 혹은 오래도록 생각하고 혹은 생각을 더욱 오래 하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러한즉 내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긴 김려 선생의 《담정유고藫庭遺藁》 권6 <사유악부서思牖樂府序>다.

그야말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김려 선생은 ‘그러한즉 내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방학하고 지금까지 '글쓰기 생각'은 했지만, ‘이게 참으로 내 생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생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가만 생각해 보니,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작가라는 프루스트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20년 동안이나 썼다. 20년 동안 프루스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생각나니 생각을 안 할 수 없어, 오늘, 몽당연필 한 자루 들고 생각을 더듬어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년 ~ 1922년]

소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만으로도 20세기 최대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천식 때문에 태양 광선, 거리의 소요, 향수의 냄새도 참기 힘들어 코르크로 밀폐된 내실에서 침대에 누워 글을 썼다. 복잡하고 풍성한 회상을 소설 속에 전개시켜 갔는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편 〈스완네 쪽으로〉는 지드에 의하여 무참히 출판을 거절당했다. 프루스트가 글을 쓴 지 20년 동안 아무도 그의 글을 읽지 않았다.

후에 지드는 "나의 생애 중 가장 큰 실수요 후회의 하나로 남으리라”고 사죄의 글을 썼다. 제1편은 자비로 출판, 제2편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이후는 지드의 배려에 의해 출판이 이루어졌다. 7편 전 16책의 대작은 죽기 수일 전에 '끝'이라고 썼으며, 그가 이 세상에서 입 밖에 낸 마지막 말은 작중 인물 중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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