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써 둔 추석

by 휴헌 간호윤

<추석 명절>

언젠가부터 명절이 즐겁지 않다. 가만 생각해보니 근 20여 년은 된 것 같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추석이었다. 먹을거리보다도 동네 한 가운데 우리 집에 오고가는 친척들이 꽤 정다웠던 듯하다. 그 친척들 대부분이 이승을 떠나고 이승을 떠난 이의 자제들은 발길을 끊고, 저러 이러한 이유로 이제 내 집을 찾는 이들도 없다.

올해는 비까지 내린다. 동생과 둘이 멋쩍게 앉아 노모에게 저녁 밥상을 받는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울타리를 넘어섰다. 이제 그 아이들은 장성하여 각자 제 길을 간다. 추석이라 하여 이 시골집을 찾을 이유가 딱히 없고 찾은들 나와 인사 두어 마디일 뿐이리라.

저녁 밥상에 소주를 겸하나 술이 술답지 못하다. 술을 먹는 나도 술을 먹는지 맹물을 마시는지 영 취기가 돌지 않는다. 글이라도 쓰면 좀 나으려나 노트북을 끌어안고 앉았으나 목석같이 자리만 지킬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시나브로 추석 풍경이 이렇게 변하였다. ‘내년 추석은 아마 이보다도 더 못하리라.’라는 생각을 한다.

어둠은 고요하고 낙숫물 듣는 소리만이 내 시골집에 그득하다. 낙숫물 소리는 예전 그대로다.

2019. 9. 12. 20:27




<조율>

엊그제 후즐근한 점퍼 차림의, 선량한 웃음을 지닌 한 출판인인, 그와 주막에 들어섰다.

명색은 조율출판사 사장님이다.

책으로 세상을 조율해 보겠다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추석 전날, 그는 나에게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 4쇄를 찍었다며 봉투를 건넸다. 4쇄라 해야 고작 몇 백 권에 불과하다. 그 책을 팔려면 1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형편을 아는 터였다. '추석 제수 비용이라도 주고 올 것을---'
돌아 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 미안한 마음이 그를 홍대 앞 주막으로 불러냈다.

출판 시장의 어려움이야 적바림하여 무엇하랴. 더욱이 그는 책을 내겠다는 출판인이다.

굶을지언정 '책만'을 내겠다는 '책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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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도 없고 해야할 말도 없다.

말없이 술잔만 오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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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래도 내 책이 자기 출판사 베스트셀러라며 수굿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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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해 미안하다며 맥맥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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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르는 나와 그의 웃음을,

'조율'이란 두 글자를,

맑은 소주잔에 자꾸만 자꾸만 털어 넣었다.


201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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