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자와 대화
‘그래’ 유감(有感)
아래는 어느 독자와 대화다.
[독자] [오후 12:38] 주제넘은 한 가지 지적하자면... 사이비2를 읽으면서도 생각했는데.. 글 쓰시면서 '그래'를 남발(?)하시네요. 위의 글에서도 굳이 '그런 글을 쓰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과된 감정, 발효된 사색에서 나오는 정 있는 그런 사람’이 그래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독자] [오후 12:39] 여기에 '그래'를 안 넣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독자] [오후 12:41] 죄송..ㅠㅠ
[휴헌 간호윤] [오후 12:44] 제 글 특징이랍니다.^^
[독자] [오후 12:51]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ㅠㅠ
아래는 내 글쓰기 책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에 써 놓은 글이다.
구구절절 모두 쓸 필요 없다는 말이다. '거미'와 '말'을 쓰려면 거미줄과 말 발자취만 슬며시 써 놓으면 된다. 거미줄에서 거미 찾고, 말 발자취 좇아 말 찾는 것은 독자 몫이다.(『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소명, 2020, 206쪽)
이건창은 이제 “어조사 따위 쓸데없는 말 구사할 겨를 없으며 속어 사용 꺼릴 틈 없다(不暇用語助等閑字 不暇避俗俚語)”고 이어 놓는다. 쉽게 풀이해 보자. ‘글’은 글 쓰는 이 뜻 전달하면 된다. 조사나, 부사 따위 쓰지 않아도 뜻은 충분히 전달된다. 한문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만, 한글 문장에서도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글의 야무진 힘인 알심과 요긴한 내용인 알짬은 조사 아닌 명사에 들어있기 때문이다.(『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소명, 2020, 381쪽)
내 글에서 ‘그래’라는 부사를 찾아봤다. 그렇지 않아도 다랑논에 허다한 피였다. 피사리가 필요하거늘 '제 글의 특징' 운운이 가소롭다. 더욱이 독자의 성향이나 나이, 지방색에 따라서도 꺼리거나 선호하는 글(어휘)이 다르다. 글 최종이 독자 몫인 이유다. “줄이겠습니다.” 한 마디면 되었다. 부끄럽다.
세상살이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난감하다. 왕희지는 못가에서 글씨를 익혔는데 연못 물이 모두 검어졌다고 한다. 손가락에 굳은 못이 박이도록 쓰고 또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