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이 농간한다’는 말은 영 헛 말이었다.
요즈음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을 겪는다. 내 블로그를 보니 몇 년 전, 써둔 저런 글이 보인다. 딱 저 때 심정과 지금 상황이 어금지금하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는 지금 이후, 오늘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난 한 치 앞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른다’와 ‘떡국이 농간한다’>
‘떡국이 농간한다’는 말이 있다. 떡국 먹는 만큼 나이 먹고, 나이 먹는 만큼 세상살이 잘 해낸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살아가며 어제 겪은 일을 오늘에 되살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인천북구도서관에 인문학 강의를 하러 가서 겪은 일이다. 주제는 ‘나는 조선인이다-아! 18세기’로 2달간 9주 차에 걸쳐 이익, 우하영, 박지원 등 실학자 8명의 8권 책을 따라잡는다. 모두 만만찮은 이들이고 저 이들이 목숨 걸고 쓴 책들이다. 단순히 ‘인생 이렇게 살라’가 아닌 국가와 백성, 삶에 대한 고뇌가 들어찬 거대담론이다. 이런 꽤 묵직한 강의를 일반 대중 상대로 2-3개월이나 하는 강의는 나나 듣는 이나 예사로운 마음 다짐으로 안 된다.
강의 시작이 되고 청중은 의외로 많은 40-50명 정도 분들이 모였다. 20대에서 70대까지 성별도 비교적 고른 분포인 듯하다. 어려운 주제에 이 정도 청중이 모였으니, 제법 강의할 맛이 난다. 이럴수록 첫 강의를 잘 풀어가야 한다. 강의 전체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전채(前菜)] 강의를 잘해야만 한다. 경험상으로 적어도 20-30분 정도는 이 강의의 목적, 유의할 점, 등 강의 전반에 대한 설명이 충분해야 된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40대쯤 돼 보이는 호리호리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강의 이렇게 진행되나요?”
“예? 예? 아.---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이런 강의를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바로 강의를 들어가야지요. 이런 강의 나는 안 듣습니다.”
저 사내는 ‘첫 강의 주제인 이익 선생으로 바로 들어가야지 왜 딴 이야기를 하느냐’였다. 나를 보는 사내의 눈빛이 섬뜩했고 마치 몹시 모욕이라도 당한 말투였다. ‘아 이런, 이를 어쩌나’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니, 다 관련 있는 것이죠.---”
그 사내는 내 말을 가볍게 인천 오이도쯤으로 귀양 보내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교단에 선 뒤로 별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런 일은 또 처음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청중들도 나도 순간의 정적이 흐르는 강의실에 잠시 그대로였다.
청중 몇 분이 이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지, “교수님 계속하시지요”하며 박수를 쳤다.
두 개의 문장이 머리 한 복판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한 치 앞도 모른다’
‘떡국이 농간한다’
췌언: 그날 강의실에 잔뜩 내려앉은 묘한 정적은 집요하게 잠자리까지 따라와 곁에 누웠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