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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Jun 26. 2024

4분 일찍 출근했더니 인생이 달리 보여요

기숙사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집을 구해서 나왔다. 7년간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퇴근하는 삶을 살아오던 나다. 걸어서 15분 정도의 출근길이 버스 정류장까지 10분, 차로 30분, 내려서 10분 총 50분의 출근길로 바뀌었다.


출근길에서 가장 큰 시간을 차지하는 건 버스에서의 시간이다. 내가 타는 정류장은 기점으로부터 두 번째 정류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점에서 탑승한다. 버스는 44인승 고속버스인데, 44인승 버스의 특징으로 맨 뒷자리에 우등좌석 4자리가 들어간다.


이사를 하고 처음 출근할 때는 버스 시간에 딱 맞춰서 나갔다. 줄은 길었지만 거의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기점에서부터 탑승하기에 편한 창가 쪽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는 없었다. 복도 쪽 자리 중에서 그나마 공간이 넉넉해 보이는 자리를 얼른 스캔해서 앉는 것이 최선이었다.


간혹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몇 시부터 나와서 기다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을 뿐, 더 이상의 고찰은 이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출근을 했다. 7시 9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집을 나서면 딱 버스를 타는 시간이 되었다. 내 앞에는 어림잡아 7명에서 많게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내 뒤에도 몇 명인가 줄을 섰다.


그러던 어느 날, 대체휴무가 권장되지만 정식 공휴일은 아니었던 날 버스 정류장에 나가 보니 사람이 몇 없었다. 버스에 타 보니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맨 뒷자리로 향했다. 44인승 버스의 맨 뒷자리는 우등좌석이고, 이 자리만큼 편한 자리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편했다. 옆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앉지 않아도 되고, 옆 사람에 쓸릴까 팔과 어깨를 움츠리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등판까지 최대한 뒤로 젖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다. 나는 앞으로 여기 앉아서 출근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버스 맨 뒤, 우등좌석에 앉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 째, 전 정거장에서 4자리가 전부 채워지지 않을 것.

둘째, 내 앞사람이 맨 뒤자리에 앉지 않을 것.


첫 번째 조건은 컨트롤할 수 없었다. 전 정거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타지 않는 한. 정 안 되면 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먼저 탑승할 생각이었다. 정류장을 조사해 보니, 아침에 5분만 일찍 나가면 시간이 얼추 맞겠다는 계산이 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다행히도 딱 한 자리는 항상 비어 있었다.


두 번째 조건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타서 좌석에 대한 선택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우등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출근하기 위해서는 몇 분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할까? 5분? 10분? 15분? 그동안 7시 9분에 세팅되어 있던 알람을 7시 5분으로 바꾸었다. 일단 4분 당겨서 나가 보고, 그래도 사람이 많으면 점차 시간을 조정할 생각이었다.


다음날, 기존보다 4분 앞당긴 시간에 나가 보니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고작 4분일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줄을 서지 않았다. 내 앞에 서 있던 사람들, 부지런해 보이던 사람들이 고작 4분 새에 나타난 것이라니!


기대를 갖고 버스에 탔다. 바로 앞에 있던 분은 앞쪽에 있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맨 뒤 4자리 중 한 자리는 비어있었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 날은 맨 앞에 서 있었다. 잔여 좌석 선택권은 오롯이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제일 먼저 고른다. 맨 뒤 자리가 있으면 무조건 거기 앉는다. 그날도 한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내가 맨 앞에 있기도 했고, 내 앞에 두 명이 있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줄을 서는 사람들 중에 맨 뒤에 앉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출근 시간을 4분 앞당긴 보상으로 아주 편안한 좌석을 얻었다. 맨 뒤에 반쯤 누워서 명상음악을 들으며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줄 서는 시간 4분으로 30분간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기회가 우리 삶 곳곳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4분의 여유에 더해 30분의 여유를 보너스로 얻었다. 혹시 이게 이 세상의 작동 원리라고 한다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계속해서 ‘앞’만 보고 내달리려고 하는 게 과연 정답인 걸까. 어쩌면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스며들어 버린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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