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도가 인사 전문가로 거듭나기까지
많은 심리학과 학생들이 HR 분야를 꿈꿉니다. 저 역시 그랬고, 지금은 그 꿈을 이루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HR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늘 정석대로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경험들이 귀중한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걸어온 특별한 경로를 통해, HR 커리어를 꿈꾸는 분들께 색다른 관점을 전하고자 합니다.
심리학 전공이 HR 업무에 주는 강점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이상심리학에서 배운 인간의 다양한 군상에 대한 이해는 채용 과정에서 큰 자산이 됩니다. 특히 인성 검사를 통해 필터링하고자 하는 조직 부적응 요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죠.
소비자심리학은 HR 브랜딩에 유용한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기업의 소구 포인트를 파악하고 이를 채용 브랜딩에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산업 및 조직심리학은 조직 운영과 개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이는 후에 내부 컨설턴트로서 업무를 수행하거나 외부 컨설팅 업체와의 협업 시 프로젝트를 더 디테일하게 커스터마이징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사회심리학에서 배운 인간 행동의 원리들은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기와 태도 관련 이론들, 인지심리학의 다양한 개념들은 HR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점이 되었죠. 게다가 심리학과의 체계적인 통계 교육은 HR Analytics를 다루는 데 있어 차별화된 강점이 되었습니다.
실천 팁: HR을 꿈꾸는 심리학 전공자라면 산업 및 조직심리학 과목에만 집중하지 마세요. 이상심리학, 소비자심리학, 사회심리학, 동기/태도 관련 과목, 인지심리학 등 다양한 과목들이 HR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수강하면 좋습니다. 특히 통계 수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 조직의 DNA는 확연히 달랐고, 이는 HR의 역할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IT 제조업 중견기업은 B2B 산업의 특성이 조직 전반에 배어있었습니다.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 애플과 같은 대형 고객사들과의 관계가 핵심이었기에, 납기 준수와 의전이 중요했고 이는 HR 업무에도 반영되었습니다. 공장의 하도급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노무 관리의 전문성도 필요했죠.
반면 카카오 계열사에서는 IT 서비스 기업만의 특성을 경험했습니다. HR이 여러 Staff 조직 중 하나로서 내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역할이 중요했고, 한정된 IT 인재 풀에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채용 브랜딩이 주요 과제였습니다.
CJ 계열사에서의 경험은 또 달랐습니다. B2C 기업의 특성상 다양한 고객의 니즈와 불만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했고, 이는 조직 전체의 빠른 호흡과 긴장감으로 이어졌습니다. HR 역시 이러한 조직의 특성과 속도에 맞춰 움직여야 했죠.
컨설팅 펌에서는 프로젝트 기반의 독특한 조직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맞춰 전문가들이 '어벤져스'처럼 팀을 이뤄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과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HR의 또 다른 전문성을 배울 수 있었죠.
이렇게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 HR이 산업과 기업의 특성에 따라 얼마나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B2B 제조업에서는 안정적인 생산 환경 유지를 위한 노무 관리와 조직 운영이 HR의 핵심이었다면, B2C 기업에서는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민첩한 HR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IT 서비스 기업의 HR은 또 달랐습니다. 인재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채용 브랜딩이 중요했고, '서비스 조직'으로서의 HR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반면 컨설팅 펌에서는 프로젝트별로 최적의 전문가 조합을 만들어내는 유연한 조직 운영의 묘미를 경험할 수 있었죠.
실천 팁:
HR 커리어를 시작할 때는 가능한 한 다양한 산업과 기업의 HR을 경험해보세요. 같은 HR이라도 산업과 기업 특성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이 매우 다릅니다.
인턴이나 단기 계약직 기회도 놓치지 마세요. 짧은 기간이라도 다양한 조직을 경험하는 것이 HR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HR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의할 때, 해당 기업의 특성과 맥락을 반드시 고려하세요. HR은 결국 비즈니스의 특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드거 샤인(Edgar Schein)의 조직문화 이론에 따르면, 조직의 가장 깊은 수준의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은 흥미롭게도 가장 눈에 보이는 것들(Artifacts)을 통해 드러납니다.
첫 직장이었던 B2B 제조업 중견기업에서는 영업사원들의 정장 차림, 사무직들의 공장 점퍼, 사무실에서도 신어야 하는 구두, 상사 보고 시에는 반드시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었습니다. 구성원들은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대형 고객사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의 기본 가정을 드러내는 단서였습니다.
반면 카카오 계열사에서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화상 미팅이 일상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회사가 직원들의 출근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반바지에 슬리퍼는 일상적인 복장이었고, 때로는 잠옷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원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IT 서비스 기업의 자율성과 업무 결과 중심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컨설팅 펌에서는 프로젝트별로 자주 바뀌는 팀 구성과 자리 배치가 유연한 조직 문화를 대변했습니다.
과외와 학원 강사 경험도 HRD 실무자로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습자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 방법을 선택하는 것부터,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까지 - 이 모든 것이 기업 교육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학습자들의 작은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면서, 저 역시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강의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습자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과정이었죠. 덕분에 지금의 HRD 업무에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가장 특별한 경험은 키다리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이 업무는 행사장이나 기업 홍보 현장에서 혼자서 기업을 대표하여 고객을 응대하고 안내하는 일이었습니다. 제 행동과 서비스가 기업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팀과 함께 움직일 때는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눈짓으로 서로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즉각적인 시너지를 내야 했습니다. (키다리 수칙 제 1번은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칙 제 2번은 분위기 Up을 위해 항상 두 팔이 팔꿈치 아래로 내려가면 안된다 = 상체로 춤을 추거나 풍선을 불거나 항상 신나게 였습니다.) 현장에서 필요한 상황 대처와 커뮤니케이션 능력, 서비스 정신은 이후 HR 실무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채용 박람회나 신입사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빠른 판단과 대처 능력이 필수적인데,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호텔 뷔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도 HR 업무에 녹아들었습니다. 당시 많은 손님을 맞이하며 각기 다른 요구와 기대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의 다양한 질문과 요구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답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HRD 업무에서 교육 참가자들이 느끼는 불편이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 제공이 아니라, 그들의 학습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중요합니다.
최근 회사에서 해외 우수 매니저들의 모회사 방문 일정이 급하게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짜리 교육 겸 행사를 단 며칠 만에 기획하고 직접 운영해야 했는데, 짧은 일정 안에서 외국인 매니저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체험, 그리고 지나치게 피곤하지 않도록 티타임과 현업 카운터파트너와의 대화와 교류 시간을 적절히 배치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종교적 제한 사항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식사 장소를 예약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일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즐거워했고,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자국으로 돌아간 뒤에 유익하고 흥미로운 하루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굉장히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다양한 아르바이트들이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경험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특히 사람을 대하는 모든 경험은 HR 실무자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배운 소통 능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은 업무에서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대처하는 경험은 HR 업무에서 매우 중요한 역량입니다.
HR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이 만드는 독특한 시각이 여러분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기반 위에 다채로운 경험을 쌓아간다면, 분명 차별화된 HR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독특한 경험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