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칠레 지휘참모대학 뜰에서외국군 장교들의 파티가 열렸다. 9개국 외국군 장교들은 각 국의 음식은 기본이고 능력 껏 소개하고 싶은 것들을 총동원하여 부스를 만들었다.
10여 년 전 결혼 한복을 혹시 몰라 가져 갔었다. 촌스런 색감이 남미의 그것들과 은근 잘 어울린다.
스폰서 라울과 대한민국 부스 오픈전
칠레 대사관을 전부 뒤져 전시할 만한 물품을 모두 가져왔다. 조촐하게 부스를 차렸다. 다행히설치에서부터 음식 준비와 파티 당일 행사 진행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1년 동안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지정된 스폰서 라울과 그 가족들, 든든한 지원군들이다. 안타깝게도 라울은 내가 지참대를 복귀한 다음 해 39세의 나이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남겨 두고 리비아 파견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지구 반대편.
크리스마스도 한여름, 세면대 배수구 물도 반대로 내려가는 낯선 나라 칠레 군인들의 삶은 뭔가 다르면서도 우리와 묘하게 닮아있다. 가족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 가장의 진급을 위해 그림자처럼 내조하며 가정에 충실한 군인 아내의 모습을 보며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던 라울 부부였다.
금요일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의 오래된 탱고바에서 새벽까지 탱고의 낭만을 즐기던 멋진 군인 라울의 명복을 빈다.
부스 준비를 도와줬던 소중한 인연들
장교라는 인연 하나만으로 집을 구하고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 등 칠레 정착을 위한 모든 것들을 당신들 딸 인양 아낌없이 도와주셨던예비역 장교단 어르신들, 벌써 여든이 훌쩍 넘으셨을 것 같다. 늘 건강하시기를 다시 한번 빈다.
해외연수로 와 있던 훈남 삼성맨,칠레의 서울대인 카톨릭대학교 교환학생들 그리고 칠레한인단체에서현지 사람들 김밥, 잡채를 좋아한다며 100인분이 넘는 푸짐한 음식들까지 준비해 주셨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부스는 포기했을 것이다. 나 혼자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파티였다.
김밥과 잡채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안타까운 건 현지인들 김밥을 "스시,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외치며 만드는 방법을 연신 물어왔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큰 스시점도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류의 바람을 타고 "스시" 말고 "김밥"이 당당히 사용되고 있기를 바라는 건 나의 야무진 생각이겠지...!!!
멕시코 중령 부인, 어디가 닮은 건지 모르겠지만 서로 자매라고 부르며 부쩍 친했다. K-드라마가 멕시코에서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연예인과 패션, 뷰티 등에 관해 떠들어 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우리는 진짜 자매였다. 이 사모님, 음식 솜씨 또한 장난이 아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2시, 거의 매일 이 댁에서 멕시코 음식을 원 없이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복을 엄청 입고 싶어 했는데 결혼 한복을 주고 올 걸 그랬다.
미군 소령 부부, 우리나라에서 약 3년간 근무했다. 부인은 유치원 원어민 강사였다. 우리말은 "감사합니다" "여보세요"밖에 모른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한국말을 굳이 배울 이유가 없었단다.
스페인어는? 파견 오기 6개월 전부터공부하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수업 듣고, 시험 보고, 발표하고 등등 이 모든 걸 외국군 중 가장 뛰어나게 잘했다. 왠지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엘살바도르, 에쿠아도르, 대한민국 전통의상
엘살바도르 중령딸 에바와 에쿠와도르 대령 부인! 에바는 K-POP에 관심이 많아 한 동안 이 집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며 엘살바도르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먹을 복이 많았던 게다. 내 식성은 토종 한국인, 신기하게 입맛에 잘 맞았다.
한 번은 식사를 하면서 중령 동기가
"앞으로 에바는 안소령 여동생 해! 그리고 안소령은 내 큰 딸하고..근데 한국은 소령을 엄청 일찍 다는 가봐? 안소령이 몇 살이지?"
알고 봤더니 에바 엄마가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나는 딱히 동안도 아니었고 오히려 밤샘 근무와 햇볕에서의 훈련으로 노안이 맞을 듯...외국인들 동양 여자 나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이런 게 외국생활의 매력인가 보다.
아르헨티나 팜파스 목동들의 가우초
아르헨티나 소령은 대사관의 전폭 지지를 받으며 아르헨티나식 소고기 바베큐 '아사도' 를 위해 소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왔다. 남미의 초원을 누비던 목동들의 전통 가우초 복장을갖춘 춤꾼들은 덤, 파티는 이들의 뮤지컬 무대인 듯했다.
멕시코 마리아치들과 함께
멕시코도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질세라 마리아치 아저씨들을 동원했다. 유쾌! 상쾌! 통쾌! 이들의 음악은 파티의 분위기를 완전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러니 우리나라 부스를 열어야 되나 고민했던 이유다. 다행히 한복과 김밥과 잡채는 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복을 입은 나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그들의 모습이 선하다.
콜롬비아, 멕시코, 대한민국 전통의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왼쪽의 저분, 콜롬비아 중령이다. 눈이 부셔 낀 선글라스가 아니다. 한 쪽 눈이 없는 분이다. 2년 전 콜롬비아 아마존 지역에서 반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폭탄이 바로 앞에서 터져 1년이 넘게 투병을 했고 결국 한 쪽 눈은 실명했다. 평소에도 늘 선글라스를 끼고 생활했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한 쪽 눈에 천으로 만들어진 테이프를 붙이고 다녔다.
내게 딸을 하자고 농담했던 엘살바도르 중령도 10여 년 전 내전에서의 부상이 몸에 선명했다. 옆구리에서 어깨로 화살이 뚫고 나가 구멍이 슝 뚫려 있었다.
틈만 나면 우리나라의 안전을 염려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단지 여군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들끼리 판단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의심의 눈초리다.
남미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대로정열 그 자체다. 축구 생방송이 있는 날이면 회식을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집에 가던 브라질 중령!
사시사철 아르헨티나의 상징하늘색 줄무늬축구복을 입고 축구공을 들고 다니던 아르헨티나 소령의 귀여운 쌍둥이 아들들!
음악이 나오면 시간, 장소, 나이를 불문하고 온몸을 맡기는 이 동네 사람들! 한여름의 색다른 크리스마스이브는 이렇게 음악과 춤으로 끝날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