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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응민 Dec 25. 2020

긍정적 산만함_별일 없이 사는 법

5분 글쓰기 : ADHD에 대한 소고

한 달 주기로 방문하는 병원. 의사는 진료에 앞서 항상 "별일 없었고요?"라고 묻는다. 워딩만 놓고 보면 평범한 안부 인사로 보인다. 그러나 병원 특성상 "별일"이 지닌 의미는 남다르게 통용된다.


ADHD 기질을 지닌 사람의 경우, 일상과 '관련 없는 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두해 '별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뉴스를 통해 접하는 철저한 '타인의 일'에 감정을 쏟느라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거나 때로 자신의 생활을 저버리고 이에 전념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사회적 현안에 관해 공분(公憤)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우선 순위를 두고 처리해야 하는 일을 제쳐두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별일'로 여긴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을 가진 사람은 하나에 쉽게 빠진다. 귀가 얇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나선다. 이직이 잦고 주변 사람과 관계도 꾸준히 지속하기 어렵다. 여기에 감정기복이 심해 불안과 충동이 지속된다.


출처 : <2번 그게 너야>, 이원익


상기 그림에서 2번이 전형적인 ADHD 기질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감정 기복의 패턴이다. 기복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 무언가 쉽게 꽂히지만 깊이는 없다. 개인의 지능에 따라 성과를 보이기도 하지만 효율성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예술 분야 종사자는 유리할 수 있으나 소수에 국한된다.


반면 1번과 같이 기복이 없는 사람은 꾸준히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동시에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우리는 흔히 2번의 사람에 흥미를 느끼고 개성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깊이가 없어 자신만의 색채가 없다. 다시 말해 기복으로 인해 삶의 과제에 있어 구획화가 잘 되지 않아 뚜렷한 색채가 없는 '무개성'의 모습을 보인다.



일상, 업무 등 삶의 과제에 대해 구획화 시키지 못하는 좌측과 반대로 각 영역별로 뚜렷한 개성과 강점을 보이는 우측.


전문가도 아닌데 잡설이 길었다. 어쨌든 오늘 홍보업계 선배와 게임업계 후배도 보고 여러 일을 진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진정한 '산만함'이었다. 흔히 ADHD 기질을 가진 사람이 산만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 그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은 산만하지 않다. 무엇 하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상 속에서 우선 순위를 두고 기질적으로 구획화가 되는 사람은 '긍정적인 산만함'을 보인다. 다양한 영역에 손을 대면서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다. 투입하는 에너지를 조절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을 가진 사람은 '별일' 없이 산다.




확실히 밝혀둘 것은 ADHD 기질을 가진 사람은 정도에 따라 기복이 다르고 앞서 밝혔듯 개인의 지능에 따라 성과가 좌우되기도 한다.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질환'은 아니다. 다만 감정 기복으로 인해 일상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이라면 이와 관련해 자기계발서적을 보고 자신의 '뇌'를 이기는 데 안간힘을 쓰기보다 내원하는 게 좋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나의 경우,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방문한 대학병원에서 2년간 오진에 가까운 약 처방으로 온몸이 상했고 지금의 병원에 옮기고서야 공황장애와 ADHD 치료를 받아 '별일' 없이 살 수 있게 됐다. 인생에서 선택한 것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오늘도 의사가 물었다. "별일 없었어요?" 나는 답했다. "별일 없죠"라고. 대부분의 일을 중요하지 않다고 넘어간 건 아니다. 신경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난 전혀 쿨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의 삶을 뒤흔들 만큼 '별일'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시련이라고 여길 만한 큰 일도 없고 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평범하고 찬란하게 살아가고 싶다.



치료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된 책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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