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나는 이 정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이전 직장에서 선생님들과 교수님들과 회식을 하면 어른들은 종종 내 나이를 물으시곤 놀라며 내가 참 젊다고 말했다. 그러면 난 접시에 코를 박고 파스타를 먹다가 움찔하고 천장을 바라보고는 헤헤 웃다가 다시 아무말 없이 파스타를 먹는다. 나에게 젊다는 그 말은 언제나 생소하다. 지금 나는 그 어느 때의 나보다 늙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어릴적 나에게 이 나이는 충분한 어른이었다. 일할 줄 알고, 사랑을 알고, 삶을 아는 사람. 지금 내 모습은 이것과는 멀다.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다. 데이터를 좋아한다는데 SQL을 할 줄 아나요? 아니요. 교육을 전공했다는데 논문을 자주 쓰나요? 아니요. 남자친구는 있으신가요? 아니요. 눈물이 다 난다.
최근 알게 된 나는 참을성이 없다. 효율적인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까 그냥 기다리는 걸 못하는 거였다. 그래서 당장 경력 5년 차가 되고 싶어서 어서 시간이 지나갔으면 싶다가도 스물일곱이란 숫자만 생각하면 다시 그 말을 취소하고. 숫자 앞에서 이리저리 방황한다. 이런 와중에 접시에 코 박고 파스타를 먹다가 내가 참 젊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생경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집에 와서 계속 곱씹으면 정신이 든다. 스물일곱은 내가 살아온 날 중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다. 내가 그리던 어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오늘의 나는 홀로 차를 몰고 가 내 돈으로 동네 닭강정과 빙수를 사 먹을 줄 안다. 내 고유 통관 번호를 가지고 있고 파리에서 아트 포스터를 직구하는 방법을 안다. 스물일곱의 나는 평행 주차를 할 줄 안다. 또 나의 감정을 진단하고 추스를 줄 안다. 나는 내 약점을 고약을 삼키는 심정으로 인정은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정도 할 줄 아는 스물일곱 살의 어른이 됐다.
용기를 내 글을 써야겠다. 이건 그저 습작이 아니라 나의 스물일곱을 영원히 장식할 작품이 될 것이기에 눈 딱 감고 용기를 내야겠다. 지금의 나는 27살의 나를 대변한다. 100세가 되어 후에 내가 뒤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한해를 만들 책임이 지금의 나에게 있다. 좀 이상한 결론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글을 계속 써야겠다.
사진: 이중섭,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석파정 서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