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인마! 넌 아직도 마누라가 무섭니?"
"무섭긴"
"정말 안 무서워?"
"짜샤! 무섭긴 뭐가 무서워?"
나는 마시던 소주잔을 꽝 내려놓고 마주한 친구 녀석에게 확 인상을 긁어 보였다.
사실이다. 마누라가 무섭지 않다.
바가지 박박 긁고 인상 쓰며 토라져도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
내 비록 지금은 백수 신세지만 내 식구 밥 굶겼어?
입을 옷을 안 사줬어? 살집 없어?
새끼들 공부 가르쳐 다 결혼시켰잖아!
해외여행도 남만큼 다녔잖아! 뭐가 무서워?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사는 것도 행복이란 말이야.
늦은 밤 마을버스에서 내려 이리저리 헛발짓하며 집으러 돌아오는 골목길.
밤하늘 허공에다 마구마구 주먹질 해본다.
이 때만은 마누라를 무서워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용감한 싸나이다.
<중앙일보 2018년 4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