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는 하늘아래
어릴 적, 날 낳아주신 엄마는 나를 떠나 기억 속에 없었다. 두 번째 엄마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였다. 세 번째 엄마는 더 이상 그 단어조차 부를 수 없었다. 아니, 부르기 싫었다. 내 엄마가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사춘기에 접어든 열다섯 살이었다.
내 인생에 있었던 세 명의 엄마들은 모두 좋은 분이셨다. 유별난 아빠가 세상의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지 못해 폭력성을 드러내자, 다들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밖에서 보면 천사 같았다. 좋은 인상에 넉넉한 인심, 가족보다 타인을 더 사랑했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밖에서 못 푸는 모든 스트레스를 술을 먹고 엄마에게 풀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것이 아빠 나름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내 성장 과정의 첫 번째 상처였다. 폭력은 아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작은 체구에 힘이 약한 엄마들은 호랑이 같은 아빠에게 매일같이 맞았다. 나는 좁은 방 안에서 울며 싸우는 엄마의 투쟁을 보며 나의 약함을 절실히 느꼈다. 아빠가 술 먹고 들어올 시간이 되면 심장이 죄어 왔다.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맥박이 미친 듯이 뛰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밀려왔다.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힘이 있었으면, 엄마가 아프지 않을 텐데, 울지 않을 텐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나의 무력함을 한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출뿐이었다. 집에 있었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느 날, 친구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처음으로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친구의 아버지는 전혀 달랐다. 아내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은 아내가 자식들과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의 눈빛, 말투... 모든 것이 나에게는 낯설었지만, 그것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임을 깨달았다.
엄마가 없는 하늘 아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집안에서는 그 누구도 사랑을 주고받지 않았다. 아빠의 강압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사랑을 느꼈다. 내 직감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식은 아빠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죽어주는 것이었다. 그게 유일한 표현 방식이라고 믿었다.
약국에서 수면제 20알을 사서 아빠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입에 털어 넣고 잠들었다. 내겐 나를 사랑해 줄 엄마가 필요했다. 그저 그게 다였다. 나를 망친 건 별난 아빠다. 내가 죽으면 반성해 모두에게 용서를 빌어. 약한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지, 때리는 것이 아니다. 아빠의 힘에 맞서지 못했던 내면의 욕망을 그렇게 분출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죽지 못한 삶을 다시 살기 위해 내 첫 번째 상처와 고통을 마주해야 했다. 너무 어리고 여렸던 나는, 이후 내 안에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왔던 세상이 모두 산산조각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