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쓰김그 Mar 14. 2022

[그냥 쓰는 글]아이를 위한 기도.

Prière pour ma mère.......


우리 엄마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다.


어린 나이부터 갖은 고생을 하다 아빠에게 시집와서 호된 삶을 살았던 엄마는 이제 좀 살만할 시기가 되니 사업을 하겠다며 여기저기 일을 벌이다 가족의 전 재산이었던 단독주택을 은행에 저당 잡히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엄마가 벌려놓은 뒷수습을 하느라 무척이나 고생한 아빠는 암에 걸려 일찍이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엄마는 기어이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되었다.


흔히 신내림을 받은 초기에는 '신빨'이 좋아 뭐든 잘 맞추는 무당이라 하건만 우리 엄마는 무당이 되어서도 그리 잘 살지 못했다.

그런 엄마의 점집 영업을 위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지인에, 친구들을 동원해 점을 보게 했다.

하지만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떡 하니 아들을 낳은 친구에게 단호히 ‘딸이야’라고 말했던 엄마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취업이 잘되지 않던 사람들에게 엄마는 곧, 잘 될 거라며 호기롭게 말했지만, 번번이 취직에 실패하던 주변인들의 원망도 가끔 들었다.

어느 친구에게는 사주풀이를 해주겠다며 생년월일과 생시를 적어놓고 한참을 동그라미를 치다 이마에서 땀 한 방울 떨어뜨리며 ‘좋아, 아주 좋아.’라고 말하던 엄마.

그 친구는 십몇년이 지난 아직도 그날 엄마가 동그라미를 몇 분 동안 그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는 신내림을 받기 전 무엇을 기도했을까.


영험한 무당이 되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점쟁이가 되기를 바랐을까.

고단하디 고단했던 삶을 인제 그만 끝낼 수 있게 기도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했을까.


똘똘하고 반짝였지만, 지독히도 가난해 국민학교 2학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남의 집 식모살이를 전전하다 반강제로 남편을 만나 딸만 넷을 내리 낳고 남편의 폭력에 얼굴이 틀어지고 이가 부러져도 어떻게든 잘살아 보겠다고 이 악물고 살아가던 여인, 

한순간의 잘못으로 사랑하는 자식들의 얼굴도 못 본 채 근 십 년을 전국 여기저기 떠돌던 여인, 

이 모든 게 무당이 되어야 하는데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신 엄마의 말을 듣고 허겁지겁 무당이 되어버린 여인.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잘될 거라고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여인.


오늘도 수없이 켜진 초들을 앞에 두고 작게 웅크려 쉼 없이 두 손을 비벼가며 죽은 이와 산 이의 복을 빌어주는 그녀의 흔들리는 어깨가 그 옛날 차갑게 옷을 입고 눈물을 훔치며 식모살이를 떠나는 어린 소녀의 흔들리는 어깨와 겹친다.


그녀의, 그 아이의 앞날에 복이 깃들기를.


(봄이 오려는지 괜히 감성이 터진 날이라 아주 오래전에 엄마를 위해서 썼던 글이 생각나서 올립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성한 곳이 없다며 한탄하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시기를 바라며. 해는 나는데 기분은 꿀쩍하고, 엄마가 만든 파김치는 먹고싶고. 일은 하기 싫고. 그럭저럭 그런 날.)

작가의 이전글 아저씨, 말로 해요, 말로. 한국말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