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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Oct 12. 2022

특별히 좋은 것 그리고 여름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인간은 수많은 것들을 두려워한다. 통증, 다른 사람의 평가, 자기 자신의 마음, 잠들기, 잠에서 깨기, 외로움, 추위, 광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면이자 위장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가지 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히 믿어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헤르만헤세 밤의 사색 중



이 문장을 길 위에서 읽었을 때 나는 글자를 가만히 응시한 채로 잠시 굳어 있었다. 헤세의 문장에 나오는 '인간' 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 '미지의 세계' 이런 짧은 말들이 주는 파장이 컸다.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친다는 문장에서는 내가 하고 있는 이것, 길을 걷는 행위를 떠나 하던 일을 그만두고 불확실한 세계로 가고 있다는 나의 상태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추상적이었던 관념이 눈 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도전이 뜬구름이 아니라 오늘 걸어야 할 이십 오키로, 아마 다음주면 도착 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있다고 명확해지는 느낌. 


어제는 걷다가 돌멩이 하나를 주웠는데 햇빛에 달구어져 돌이 따뜻했다. 돌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컸지만 직사각형 모양과 손에 쥐기에 좋은 크기였다. 나는 그 돌을 꼭 쥐고 걸었다. 돌이 손바닥에 닿으면서 느껴지는 촉감, 조금 거칠지만 안정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감각 중에 나는 후각과 촉각을 특히나 좋아하는데 자연에서는 특히 이 감각들이 좋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풀 냄새를 맡고 나무를 어루만지고 커다란 바위에 손을 가만히 얹어본다. 먼지와 흙, 작은 날벌레들 작은 입자들이 날아다니는 그곳에는 어떤 기운이 담겨져 있다. 나는 걸으면서 종종 나무를 팔로 감싸 안거나 나무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 손, 얼굴을 가져다댄다. 그럴 땐 무언의 언어로 교감하는 기분이 든다. 이 나무 덕분에 순례길을 걷는 것이라고. 이 나무 덕분에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고 마음 속으로 속삭인다. 


나는 결국 그 돌멩이를 한국까지 가져왔다. 배낭에 넣어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한국 땅까지 밟게 한 것이다. 그 돌멩이는 우리집 책장에 고이 앉아있다. 




'한창 내려가서 bar에 한 번 더 갔다. 거기서 맥주를 마시며 헤세의 글을 곱씹었다. 오늘은 눈과 다리와 귀와 코가 아주 행복한 시간이구나. 너무나 행복했다. 자연이 주는 행복.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2022.8.30 화요일, 라라구냐에서 트리아카스텔라로 가는 길에서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 스페인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나 올해는 서유럽에 폭염주의보가 잦았다. 칠월에 파리에 있을 땐 사십 도까지 올랐던 적도 있었다. 가지고 있던 헤드폰의 가죽이 더위에 벗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이 여름이길 바라는 인간이고 그 여름을 스페인에서 보내고 싶은 좀 욕심이 많은 인간이다. 어떻게 매년 여름을 스페인에서 보내나. 불가능하기에 꿈꿔본다. 


트리아카스텔라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삼 년 전에도 왔던 곳인데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여권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된 마을이었다. 알베르게 도착 후 체크인을 하려고 배낭을 열었는데 여권이 없었다. 여권과 늘 함께 있던 순례자 여권도 없었다. 같이 넣어둔 지퍼백을 분실한 것이었다. 그때의 난 완전 패닉에 빠져있었다. 호스피탈로는 내가 아무리 순례자처럼 보여도 여권이 없다면 받아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나를 거절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스페인 친구가 도와줘서 간신히 체크인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마을........ 지금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리고 삼 년 후 다행히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다니고 있다. 지금은 다른 알베르게에 왔지만 건너편에 그곳이 있다. 작은 시골이라 그런지 특별하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 길에서 지금이 십 구년도인지 이십 이년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삼 년의 공백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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