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나는 누구일까?

특별한 일상, 글쓰기 시작을 결심한 나에게

by 강게리

상상. 배움. 행복.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 세 단어가 몇 주 고민 끝에 현재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인 걸로 결론 내렸다.




오랜만의 평일 이른 오후, 컴컴한 암흑의 공간의 게이트를 넘어 빛을 마주하는 기분으로 서울 시내를 나섰다. 남들 다 모니터 앞에서 영혼을 갈아 넣고 있을 시간, 번화가의 한적함을 걷는 것만큼 짜릿한 자본주의의 맛이 또 있을까.

이 얄팍한 여유 속에서 나는 '상상'이라는 사치를 부려본다. 시간에 쫓기고 제한된 사고에 갇혀 있을 땐 뇌세포마저 파업을 선언하지만, 통장에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남으면 머릿속에 잔잔한 은빛 물결이 친다. 아, 평생 이렇게 상상만 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물론 내일의 출근과 다음 달의 카드갑이 날 다시 현실의 시궁창으로 멱살 잡고 끌어내리겠지만 말이다.


내가 향한 곳은 충무아트센터. 조선시대 최고의 공돌이이자 사내 정치의 희생양, 장영실의 미스터리를 다룬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를 보러 왔다. 초연이라 그런지 눈에 밟히는 후기들이 좀 있었는데, 가사가 안 들린다는 둥 후기들이 내 지갑을 망설이게 했지만, 내 최애 배우가 나온다는데 어쩌겠는가. 기꺼이 호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결과는? 내피 같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이미 탑티어급 인지도와 남부럽지 않은 통장 잔고를 가졌을 텐데도 저렇게 무대 위에서 뼈를 갈아 넣다니. 매번 관람할 때마다 진화하는 그의 지독한 노력 앞에서는 묘한 패배감마저 들었다.그래, 나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인간이어야지. 저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대단한 결과물을 내진 못하더라도,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문물 앞에서 "라떼는 말이야"만 찾는 화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언가를 배우려는 열망마저 놓아버린다면, 그것은 이 징그러운 현대 사회에서 산 채로 매장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생각한다.


커튼콜이 오르고 공연이 끝을 알릴 때쯤, 나는 내 신경계가 '행복'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몰입하느라 그 순간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느꼈으니 되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몰입하고, 상상하고, 영감을 쥐어짜 내는 이 시간. 자본주의가 허락한 가장 합법적이고 비싼 도파민에 굴복하는 이 순간이 좋다. 극 중 내 명치를 때린 건 극의 절정도, 화려한 넘버도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누군가

"영실아!"

"영실아~"

"영실아."

하고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장면.


스쳐갔던 인연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유독 내 마음에 깊게 울렸다. 어릴 적 부모님은 물론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흔하게도 불렀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거대한 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한 이후, 내 이름은 거세당했다. 직함, 역할, 혹은 고객님. 내 이름 석자는 그저 택배 기사님으로부터 배달온 택배물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 따위로 쓰이고 있었다. 본인 확인을 위한 식별코드랄까? 내 이름이 희미해져 감을 새삼 느낀다.자유롭게 상상하고 항상 배움의 의지가 있으며, 때때로 행복해 보였던 나의 이름을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