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키운 효자, 결혼이 낳은 불효자

내 엄마가 시어머니가 되는 순간

by 강게리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며, 쳇바퀴 구르는 햄스터처럼 살아온 지 꼬박 20년. 나는 내가 그저 생활력 강하고 성실한 놈인 줄 알았다. 결혼 전엔 몰랐다. '착한 아들'이라는 명찰이 내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 치명적인 질병일 줄은.




발병의 서막은 스무 살 무렵,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아버지는 꼭 어디서 '벼락 맞을 사업 아이템'만 귀신같이 주워오시는 기묘한 재주가 있으셨고, 그 덕에 우리 집은 늘 묘하게 가난했다. 결국 이혼 후 가방끈 짧은 엄마는 끓어오르고 얼어붙는 낡은 빌라에 맨몸으로 던져졌다.


어느 날 퇴근하고 오니, 엄마가 보일러 쪽 바닥을 멍하니 응시하며 주저앉아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이혼의 상처, 삶의 무게, 그리고 짙은 우울증과 절망감…!' 나는 그날로 찌질한 막내아들에서 '처절한 가족의 구원자'로 회귀할 것을 맹세했다. 훗날, 혹시나 상처를 건드릴까 조심스레 그때 왜 그렇게 주저앉아 계셨냐고 물었다. 엄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어떻게 고칠까 궁리 중이었어."…그렇다. 나 혼자 찍은 처절한 인간극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동이 걸린 나의 맹목적인 효심은 멈출 줄을 몰랐다.


군대에 말뚝을 박고 한 달 생활비 5만 원으로 버티는 극한의 생존 게임을 시작했다. 당시 선배가 "부모님께 매달 찔끔 주면 당연한 줄 안다. 목돈으로 한 방에 팍 안겨드려야 약발이 산다"는 기가 막힌 심리학적 통찰을 전수해 주었고, 나는 이 탁월한 재무적 결단에 완벽히 매료되었다. 당장 현금이 줄어 불편하다는 엄마의 노골적인 불만조차 내 반골 기질을 자극할 뿐이었다. '아, 이래서 목돈으로 가야 하는구나!' 나는 스스로를 월 스트리트의 천재라 착각하며 기어이 제대 후 천만 원을 떡하니 안겨드렸다. 내 짠내 나는 효심의 절정이었다.


그렇게 숨도 안 쉬고 달려 어느덧 마흔 초반. 남들보다 한참 늦게 '결혼'이란 걸 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니 이제 '좋은 게 좋은' 평화로운 꽃길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흔 넘도록 세상물정 몰랐던 K-아들의 순진해 빠진 대착각이었다. 아내가 우리 가족의 바운더리에 들어온 순간, 내 평생 알던 '우리 엄마'가 증발했다. 대신 그 자리에 어디서부터 축적된 건지 모를 옛날식 시집살이 문화를 온몸으로 체화한, '조선시대 시어머니' 한 분이 소환되었다.


가난이라는 괴물에 쫓겨 강제 봉인되어 있던 엄마의 뼛속 깊은 유교적 본능이, '며느리'라는 합법적 타깃을 만나자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 것이다. 내 뇌는 지독한 인지부조화로 타들어 갔다. 새벽마다 따뜻한 밥을 차려내고, 출근하는 내 굽은 등에 "오늘도 힘내라"며 귀한 홍삼 진액을 꽂아주던 그 자애로운 구원자가, 며느리 앞에서는 숨 막히는 통제관으로 돌변하다니. 천사가 악마로 변한 게 아니었다. 나를 향했던 그 지독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화살표가, 며느리의 명치를 향해 방향을 틀었을 뿐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서늘한 비상벨이 울렸다.


'나를 낳아준 엄마라도, 이건 아니다.'


나는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이 구역의 미친 '불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배은망덕하다 돌을 던진대도 어쩔 수 없다. 이 고독하고 처절한 고부갈등 한가운데서 팝콘 대신 식은땀을 흘리며 살아남은, 어느 불효자의 짠내 나는 생존기를 이제부터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일단, 눈물 좀 닦고.



작가의 이전글현재의 나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