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의자 vs 동물 해방주의자
생태 환경주의와 환경윤리 동물 해방주의
멸종위기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멸종위기종 중 한 마리의 고통에 공감하고 생명을 보호하고픈 마음은 같지 않다. 예를 들면, 수달이란 멸종위기종을 걱정하는 것과 개별 수달에 대한 목숨을 소중히 다루는 것은 다르다는 거다. 전자는 환경주의 주장이지만 후자는 환경윤리 동물 해방주의이다. 우린 대개 환경주의와 동물 해방주의가 같으려니 생각하기 쉽지만 많이 다르다. 즉, 동물보호 관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고 서로를 오해해서 잘못 결혼한 것이다.
환경주의자는 사냥할 수 있는가? 모든 환경주의자가 사냥을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사냥을 한다고 환경주의자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환경주의 대부 격인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교수 예를 한번 살펴보자. ‘대지윤리(Land Ethic)’를 발표한 그는 1887년 아이오와에서 태어나 미국산림청에서 근무했고 뉴멕시코주에 미국 최초의 길라 야생보호구역을 만들기도 했으며 1948년 죽을 때까지 위스콘신대학 농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런 그가 국립공원 내 사냥을 즐겼다고 하니 마치 동물권 보호주의자가 햄버거 패티를 즐기고 운동하면서 닭가슴살을 먹는 것을 보는듯 해 의아해 진다.
레오폴드 교수의 주장은 분명하고 뚜렷했으며 솔직했다. 모든 동물은 생명 체계인 생태 속에서만 보호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인 즉슨, 자연 법칙은 동물 한마리 한마리가 모두 고통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되는 존재가 아니라 포식자-피식자 자연선택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생태적 관점에서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는 현상으로 특정 동물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면 이는 심각하게 다루면서 보호받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동물 한마리 한마리까지 인간이 보호하면서 고통과 굶주림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환경윤리 동물 해방주의는 레오폴드 교수의 주장과 다르다. 모든 동물은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음식을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살되는 동물에 대한 권리와 이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주장한다. 동물 해방주의자도 인간이 모든 동물의 고통을 면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되며 가능한 방법으로 치를 수 있는 한도의 비용 내에서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법칙을 존중하는 생태 환경주의와 인도적 윤리 기반의 동물해방주의가 모두 동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만 관점과 실천 방향은 지극히 다르다. 우리도 이런 면에서 솔직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행과 멋에 취해 동물을 함부로 얘기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관점을 갖고 솔직해 질 때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윤리가 세워질 수 있다.
“동물” 사랑이란 감성적인 무책임으로 생태 속 동물에 대한 언어유희를 말하는 자와 폭탄주 안주로 고기를 굽는 자의 연합은 환경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경윤리 동물 해방주의자도 아닌 욕망의 결합인 나쁜 결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