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 과거의 원인이 되다
다윈의 선물을 아인슈타인이 예쁘게 포장했다
진화의 새로운 기원을 연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자연이 선택한 것은 현재의 지금이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있는, 즉 온갖 역경에도 생존해 낸 모든 생명은 자연이 선택해줘서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내 주위에 있는 나무, 동물, 미생물 모두는 나와 함께 자연의 선택을 받아 바로 지금 오늘 이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선택 받았으니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미심장할 뿐더러 흥미롭기까지 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이 순간이 “최종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원인을 우리는 대개 과거에서 찾는데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원인이라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의아하지만 그 만큼 관심이 간다. 무엇의 원인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과거의 끝은 어디인가? 물론 현재인데, 여기에 조금 더 논리를 담아보면 “과거의 끝에 놓인 결과는 현재의 수단이 된다”. 이 말은 하버드의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헤이그 교수가 한 설명이다.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가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논리인데 헤이그 교수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자연에는 시간의 흐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순환이 있을 뿐이다.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변형도 크게 보면 순환의 한 모습이다. 그러니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의 고리 속에서 의미를 찾아 선택할 뿐이다. 물론 의미는 인간의 시선으로 찾아낸 것이지만 말이다. 정리하면 자연은 순환 고리 속에서 그냥 선택한다.
자연이 선택한 현재가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얼마든지 과거의 원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말도 안되는 말 장난이라고 펄쩍뛰는 합리와 이성의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지독하게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해석한 헤이그 교수의 “최종 원인” 개념은 시간의 굴레를 차원이 다르게 극복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도 맥이 닿아 있다. 다윈을 제 2의 뉴턴이라고 하는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인슈타인이 누구인가? 자칭 뉴턴의 계승자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아무래도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최종 원인”은 논센스라고 보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현재 지금이 과거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면 어떤가? “현재는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미래의 수단이다”.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과 모습이 다가올 미래의 일을 발생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해 보자. 미래 발생할 일은 과거의 일과 많이 다른가? 현상과 모습이 비슷한데 다르다고 하는 것은 시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그렇게 다르지 않고 시간 흐름의 연장선 상에 놓인 위치만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시간이 갖는 상대성을 이론의 가설로 받아들이면 현재는 과거의 원인이 되는 것도 얼마든 가능해진다.
가설, 가정, 상황과 조건 등이 꽤 많이 개입되어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인간은 의미를 중하게 여기지 않는가. “최종 원인” 가설의 시도는, 과거를 원인으로 현재가 발생했다는 것 대신 현재가 과거의 원인이라는 “의미”를 담는 해석을 하는 것일 뿐이다.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가능한 해석이다. 또한 그렇게 해석하는 편이 현재라는 현실에 의미를 담기 효과적이다. 인간에게 의미가 사라지면 그냥 곧 바로 죽음이다. 목숨이 다한 죽음이 아닌 의미없는 삶으로서의 죽음이라 깊은 허무가 순식간에 다가온다. 과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가능한 이론적 가설이 있는데 애써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허무하고 의미를 찾기 힘든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종병기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