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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는 농간에 제대로 복수하려면

사회적 복수는 오직 움직임으로

by 강하단

괴롭히는 농간에 제대로 복수하려면


욕하는 댓글을 확인하고 괴롭다면 이런 식으로 보자. 산 옷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과감하게 버리고 다른 옷을 사는 행동을 하듯 댓글도 마음에서 버릴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말도 옷도 원래 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옷을 살 수 있다. 험담을 듣고 난 후에 기분이 좋지 않고 벗어나고 싶어도 쉬 그렇게 못한다면 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물론 말 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럼 두번째 방법을 해보자. 험담을 듣든지 새 옷을 입으면 자아 하나가 새롭게 추가된 것이라고 여기자. 자아란 거창한 것이니 더 힘들어 지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말듣고 옷입는 상황이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자아임을 또한 알아야 한다. 상황이 지나도 머리 속에 악담이 맴돌고 산 옷이 계속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면 못난 자아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차를 구입하고 평생의 집을 마련한다고 생각해 보자. 분명 앞의 옷 사는 것에 비하면 자주 하기 힘들다. 사람에 따라 차이야 있겠지만 차는 손꼽을 정도, 집은 평생 단 한번인 사람도 많다. 하지만 거창하게 차와 집을 마련해도 생기는 자아가 덩달아 거창한 것은 아니다. 스치듯 우리에게 다가와 누군가에는 오래 머물지만 누군가에게는 상대적으로 무심할 수 있는 사물이기도 하다.


자기 집을 어렵게 구입하고는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살아보니 처음 선택할 때와는 달리 단점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집 주위 환경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을 사고 가장 힘들어지는 것은 집 값이 떨어졌을 때다. 남들은 집을 사면 구매할 때 가격 만큼 또는 그 이상 오르는 경우도 있다는데 어떻게 된게 평생 저축해 힘들게 산 집이, 하필이면 내가 산 집이 떨어지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이 한없이 미워져 괴롭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것 모두 도구이며 자신이 선택해 옆에 잠시 놓아 둔 자아에 불과하다. 댓글에 힘들어 하는 자아, 새 옷에 만족 못하는 자아, 외제차를 마련해 신나게 달리고 싶은 자아, 마련한 집 값이 오르길 바라는 자아일 뿐다. 모두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 만들어진 자아란 뜻이다. 자기 옆에 두면 자아지만 두지 않으면 그냥 도구가 된다. 조금 더 좁혀 핵심을 말하면 이 모든 것에 돈이란 기호가 관여하니 돈이란 기호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는 자아를 발견한다. 돈이 자아요, 정체성이 되었다. 돈과 같은 기호가 어찌 나의 정체성이겠냐고 항변하겠지만 말과는 달리 하는 행동과 사고, 드러나는 가치관을 살펴보면 영락없이 기호가 정체성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소비가 정체성을 좌우하는 시대 더욱 그러하며 그것도 다양한 기호가 아닌 딱 하나의 기호에 말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곳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식당의 음식 맛보다는 미쉘린 지표에 더 매몰되고 핸드백의 디자인 보다는 돈과 가격이 가져다준 명품 브랜드를 더 선호한다. 말과 언어도 다르지 않다. 대화하는 상황에 맞는, 즉, 맥락에 맞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선택해서 표현하기 보다는, 일단, “스웩”, “쿨”, “대박”, “소름”, 엄지척과 같은 상징이 된 상품형 표현, 브랜드화 된 평가용 단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돈이, 말과 언어가, 교육과 경제 등 사회체계의 소통 기호 모두가 이렇듯 획일적이고 다른 상황이 생겨도 별반 다르게 사용되지 못한다면 심한 말과 댓글을 듣는다고, 명품과 외제차 갖지 못한다고, 집값 오르지 않는다고 자발적으로 심지어 애써 자신을 왜 괴롭혀야 하는지 의아해진다. 남들과 비슷해 지지 못해 힘든 것은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가 부리는 농간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이다. 힘들고 괴로운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는데 기호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가 힘든 이유는 행동, 소통, 의미, 해석 등의 차이와 질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전달하는 도구라고 믿는 언어, 돈, 학위와 같은 기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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