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호소하는 항공여행
훌륭한 뜻으로 뿜더라도 탄소는 탄소다
여행이 비록 상업적으로 퇴색해 관광이 되었다 하더라도 순기능이 없는건 아니다. 국경과 보이지 않는 경계 속에서 외부를 배척하는 문화를 깨는데 한 몫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 가능해진 항공여행이 기후재앙의 원인인 탄소배출 주범이라는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BTS 멤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기후재앙 극복에 동참해 달라는 콘서트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이에 공감하는 전 세계 아미들이 동참한다면 수만명이 서울로 오는 항공기 탄소배출과 공연을 통해 다지게 되는 기후위기 극복 정신은 어떻게 비교하면서 의미의 경중을 판단해야 하는걸까? 다른 예로, 극단적으로 비행기 여행을 거부함으로써 탄소배출을 않고 녹색 삶을 이어가면서 공동체, 마을 중심으로 산다면 지금의 기후재앙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판단은 다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탄소배출 주범으로 집중 포화를 당하는 항공여행은 조금 억울해진다.
1999년 교수를 시작하고 2008년까지 해외 학회에 고집스럽게 나가지 않았다. 새로운 밀레니움을 시작하는 2000년대는 글로벌 시대였고 학교에서도 해외 학술활동을 권장하고 그런 실적을 업적 평가에 본격적으로 반영하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어쩌면 무모하게 보일 정도의 고집이었다. 그러다 영국의 대안생태운동 센터인 CAT(cat.org.uk)라는 곳을 발견하고 이곳은 아무래도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메일로 방문을 타진했다. 몇일만에 돌아온 답장에는 기후변화 위기 시대 한국에서 영국까지 탄소를 뿜으며 올 것까지 없다는 거절이 담겨 있었다. 사실 CAT센터를 소개하는 책의 저자들과 인터넷 녹색활동가들도 항공기로 방문했고 CAT센터의 여러 활동가들도 한국을 포함해 세계 여러 곳을 방문해 그들 센터를 소개했는데 그들의 녹색정신의 잣대에 의해 걸러진 셈이다. 물론 섭섭함도 있었고 혼란스러웠지만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방문을 포기했었다.
한 사람이 기후재앙 극복을 위해 1년 내내 자가용으로 출퇴근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해외여행 딱 한번만 다녀오면 출퇴근은 물론 가까운 거리도 자가용 타고 다닌 사람보다 탄소배출량은 많아진다. 여기 공동체 마을이 있어 마을 내 웬만한 곳은 걷든지 자전거로 이동하고 조금 먼 인근 도시까지 가야할 일이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하자. 그런데 다른 나라의 생태공동체 마을과의 교류를 위해 공동체 주민이 항공기로 방문한다면 적어도 탄소 배출 양의 측면에서는 그간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상업적 비즈니스 그리고 관광과 기후변화 대응 연대를 위한 여행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한다면 물론 그렇다고 동의해야 할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다가도 그동안의 비판이 대부분 탄소배출양 기준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는 혼란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탄소와 온난화 가스에 생태적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기후변화의 속도가 조절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