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또는 오브제
생긴 모양은 분명 물 마시는 잔처럼 생겼는데, 전시된 잔의 제목이 만약 “마실 수 없는 잔”이라고 되어 있다면 이를 보는 관찰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모습은 잔인데 물을 부으면 새는 걸까? 재료에 독성이 있어 물을 마시면 독약을 먹는 걸까? 아니면 너무 비싼 고가의 잔이라 물을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 감상만 하라는 건가 등의 상상을 할 수 있다.
이유와 배경이 어떻든 “마실 수 없는 잔”이라는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추상의 형태를 갖는 잔을 제작함으로써 관찰자 관객으로 하여금 갖가지 상상을 하게 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반전이 있을 수 있다. 작품의 모습만 갖추고 ‘마실 수 없는 잔’, 즉 기능을 삭제한 오브제로서의 잔이라는 제목만 가질 뿐 잔은 물을 마시는데 사용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추상은 이런 식으로 물을 마시는 용도를 벗어나 잔이란 물건의 순수한 목적으로 돌아가게금 도와준다. 무엇을 담아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목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