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잘 울지 않는데,
요즘 만화만 보면 수도꼭지 틀은 듯 눈물이 샙니다.
어린 시절을 채워준 만화들이 특히 그래요.
저는 요즘에도 힘이 드는 순간이 오면
디지몬 OST인 ‘Butter fly’를 듣습니다.
가장 최근 개봉했던 디지몬 극장판.
모두를 위해 마지막 진화를 사용하면,
평생 함께였던 파트너와의 연결이 끊긴다는 상황을
작중에 보여주었습니다.
그중에 아구몬이 타이치(태일이)와 얘기하며
“많이 컸다”라는 말을 합니다.
꼬맹이일 때 만나서 타이치는 성인이 됐거든요.
마지막 여정인 것이죠.
여기서
아구몬은 디지몬을 만들어 준 어른들을,
타이치는 디지몬을 보고 자란 아이들을 보여준다 생각했어요. 이미 수백 번도 더 싸워온 어른들이 이제 막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 같았습니다.
결국 모두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진화를 했고
제대로 된 인사도 건네기 전에 디지몬은 사라져요.
디지바이스는 힘을 잃고 돌이 됩니다.
평생을 함께한,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가족이 되어준 파트너와
한 순간에 헤어지게 되죠.
디지몬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힘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성인이 될수록 연결이 약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설렜던 그 구간.
진화 장면은 시리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저 장면과 배경음악은 글만 읽어도 상상이 됩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끝까지 뚫고 나가는,
그 지점에서 파트너와의 유대를 통해
더 큰 힘을 얻고 진화하는 장면들이 마치
한창 크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아이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하는 힘은 만화였고
어떤 어려움에도 부딪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한계를 넘어서는 마음가짐을 알려주려 했던 것 같아요.
어릴 적의 순수한 마음,
그걸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힘,
‘이겨낼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그걸 깨우쳤을 때 겪게 되는 이별.
어쩌면 만화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가장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 아닐까’ 싶습니다. 서른이 넘은 지금, 다시 옛날 만화들을 보면 눈물이 나는 이유겠죠.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은
타이치(태일)의 졸업 논문을 비추며 끝납니다.
인류와 디지몬의 공생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저는 여기서 디지몬이 동심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가장 순수했던 때, 어려움을 만나도 속에 끓어오르는 투기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 현실에 적응하며 그 마음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잊지 않고 이어간다면 다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걸 말해주는 듯해요.
어쩌면 맑았던 마음 그 자체가 모두의 파트너 디지몬이 아닐까요. 나이를 먹으며 잊혀지지만, 먼저 그 시대를 살아간 어른들께서 우리에게도 파트너가, 동심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한계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 넘길 수 있고,
언젠가 긴 모험도 끝이 납니다.
저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포기만 하지 마세요.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서사가, 만화 관련 영상에 자주 붙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장면으로 남기를 바랍니다.